기름·먹거리값 할인, '고물가 부메랑' 될라…불청객 된 소비

입력
2022.06.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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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대처, 농축수산물 할인·1조 지원
엔데믹 후 소비 증가와 겹쳐 물가 높일 수도
"물가·소비, 적당한 균형 필요"

# 세종에 사는 60대 유모씨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 즐거움을 안기던 두 손주의 방문날이 요즘 걱정이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가격이 엄청 올랐어. 고기랑 상추랑 한 끼 2만 원이면 거뜬했는데 이제 3만 원도 부족해. 우리 부부끼리 먹는 건 진작 줄였지. 손주들은 사 줘야 할 거 아니야. 솔직히 부담돼."

# 전남 담양군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50대 정모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시내처럼 '박리다매 영업'도 할 수 없다니까. 수지타산 맞추려니 가격은 올려야 하고 손님은 줄고... 방법이 없네."

"1만 원 더 드는 손주 고깃값, 이젠 부담"

연일 높아지는 물가로 소비자도, 자영업자도 아우성이다. 정부는 각종 물품 값을 깎아 주는 방식으로 소비자와 자영업자 부담 덜어주기에 나섰다. 법이 허용하는 한도로 유류세 인하, 축·수산물 할인, 농산물 비축물량 방출 등이다.

서민층 지원도 확대한다. 24일부터는 저소득층 227만 가구에 1조 원 규모의 긴급생활지원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3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심사숙고하고, 월세 세액공제율 한도를 12%에서 15%로 상향 검토하는 것도 13년 9개월 만에 5%대까지 치솟은 물가 부담을 줄이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가격 할인·소비 확대, 고물가 부추길 수도


그러나 가격 할인 정책과 서민 현금 지원은 코로나19 방역 완화에 따른 사회 활동 증가와 겹쳐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대책들이 코로나19가 극성일 때 경기 회복을 위해 정부에서 풀었던 할인 쿠폰, 상생지원금 등 소비 진작책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고물가 시기에 소비를 늘리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판단한 제조사, 자영업자 등이 물품 값을 더 높일 수도 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일상 회복 이후 전반적인 소비 증가세까지 겹치면 정부 정책이 물가에 끼치는 파급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3월 7.3%에 그쳤던 카드 국내 승인액 증가폭은 4, 5월에 각각 13.8%, 16.4%로 뛰었다. 소비 확대가 가라앉았던 경기를 되살리고 있으나 한편으론 물가도 높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한국은행도 최근 물가 상승 압박 요인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공급 측면뿐 아니라 소비 등 수요 측면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는 수요는 앞으로 물가를 더 자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물가가 급등한 일부 품목에 한해 실시하는 가격 할인은 '핀셋 정책'으로, 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본다. 다만 정부도 최근 소비 증가에 대해선 한은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물가만 생각해 늘고 있는 소비를 억제했다간 경기가 냉각될 수도 있다"며 "물가, 소비를 적당하게 유지하는 균형이 필요한데 기준금리 인상 등과의 정책 조합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