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1년 9개월 만에 뒤집은 해양경찰을 향한 비판이 해경 내부에서도 거세지고 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사망 당시 47세)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도 "성급하게 무리해서 단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20일 해경에 따르면, 인천해양경찰서가 공무원 피격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16일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해경 게시판에는 해경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해당 회사나 기관 메일 주소를 인증한 사람만 글을 올릴 수 있다.
해경의 한 직원은 "세월호에 이어 공무원 피격 사건 때도 자체 수사 결과가 아닌 정부 결정과 판단만 앵무새처럼 읊고 있다"며 "한심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 결과를 번복하는) 브리핑 이후 인천서가 전화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다"며 "적어도 국민들이 인정할 만한 재조사를 거친 뒤 번복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2의 세월호 (해경) 해체 같은 상황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수사 결과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번복할 거라면 수사권이 무슨 필요가 있나"라고 덧붙였다.
다른 해경 직원도 "세월호 때는 윗선이 선장의 책무고 뭐고 입도 뻥긋 못 하고 겸허히 (해경 해체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직원들이) 억울하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나"라며 "윗선이 배가 산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눈감고 항해하는 듯하다"고 적었다. 또다른 해경 직원은 "인천해경서장에게 총대 (수사 결과 번복 발표) 메게 한 거 보고 정말 실망스러웠다"며 "(자진 월북) 발표는 본청이 하고 사과는 일선서가 하는 게 맞나"라고 썼다.
이 밖에도 "정치 해경들 명예롭게 면직하자", "무능한 지휘부 때문에 조직이 흔들린다", "지휘부는 '충성'이라는 경례를 받을 자격이 있나", "지휘부는 본인 영달이나 진급이 아닌 조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등 지휘부를 겨냥한 글들이 게시판을 채웠다.
해경이 수사 초기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도 내부 비판이 적지 않다. 해경청의 한 간부는 "당시 지휘부가 명확한 증거 없이 국방부 입장을 따라 성급하게 무리해서 월북을 단정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천해경서는 지난 16일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년 9개월 전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던 본청 입장을 별다른 근거 없이 뒤집은 것이다.
이씨는 2020년 9월 21일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 떠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된 뒤 표류하다가 이튿날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 총격을 받아 숨졌다. 북한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이씨 시신을 불태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