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에너지 무기화'에... 유럽 지도자들이 떨고 있다

입력
2022.06.19 20:20
프랑스 에너지가격 급등에 마크롱 인기 흔들
블룸버그 "유럽 가스 배급제 가능성도 커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에너지 무기화’가 유럽 정치 판도까지 흔들고 있다. 올해 하반기 주요국에서 굵직한 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천연가스와 원윳값이 치솟으면서 나타난 민심 이반이 표심에 반영될 수 있는 탓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가스를 배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의 천연가스 공급 감축 결정이 유럽 지도자들의 투표함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에너지 가격이 압박을 받으면서 정상들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며 각종 경제 제재에 나서자, 러시아는 유럽 각국으로 향하는 가스 공급 죄기에 나섰다. 지난 15일에는 국영 기업 가스프롬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60% 이상 줄이면서 EU 내 천연가스 가격이 50% 뛰기도 했다. 이 같은 에너지 가격 급등은 전방위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고, 각국 정권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푸틴발 선거 악재의 첫 가늠자는 프랑스 총선거 결선 투표(19일)다. 하원 의원 577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 중도연합 ‘앙상블’이 승리하되, 원내 과반(289석) 확보까지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4월 재선에 성공한 점을 감안하면 두 달 사이 지지층이 대거 빠져나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마크롱 행정부가 순식간에 민심을 잃은 대표적 요인은 급등한 에너지 가격이다. 정부가 △가스·전기료 상한선 설정 △휘발유 가격 일부 환급 등을 통한 약 280억 달러(약 36조 원) 규모의 지원 정책을 펼치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떠난 민심을 되돌리긴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다. 프랑스 파리 외곽 지역에 사는 시민은 WSJ에 “사람들은 이미 극한까지 버티고 있다”며 “(에너지 위기는) 언젠간 터질 것이고 그때는 초대형 시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를 불렀던 2018년 ‘노란 조끼 시위’도 정부가 에너지 가격 급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내년 6월 총선이 예정된 이탈리아 역시 유류세 인하로 소비자들의 연료 부담 낮추기에 나섰다. 한시적 조치였지만 정부는 연장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아예 소비를 줄이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집주인들이 세입자 가구의 겨울철 난방을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기업들이 가스 소비권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식이다. 최악의 경우 정부가 ‘가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회주의 국가처럼 가스를 직접 배급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 전력·가스업체들이 겨울에 대비해 비축해둔 가스를 끌어 써야 할 상황에 내몰린다면, 독일 정부가 몇 달 안에 가스 배급을 통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