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성격의 지적장애인이 저금통을 몇 번 훔쳤다가 징역 6개월을 받았는데, 경찰 공무원 아버지가 재혼 후 아들을 외면해 10년을 갇혀 지낸 경우도 봤습니다."
범법 심신장애인(정신질환·발달장애)을 구금하며 치료하는 국립법무병원(충남 공주 치료감호소)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형량의 몇 배를 갇히는 게 치료감호소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 치료감호소에는 법원이 정한 형량과는 별개로 최장 15년(살인죄는 21년)까지 구금될 수 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확인한 사례만 해도 형량보다 8배, 11배에 달하는 기간 수감된 사례들이 있었다. 정신연령 3세의 발달장애인 윤준형(32·가명)씨는 행인들을 밀치고 때렸다가 기소를 면한 대신 치료감호소에서 4년을 살았다. 조현병을 앓던 오한수(58·가명·사망)씨도 행인을 때리고 위협했다가 5년 6개월(형량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을 치료감호소에서 머물고는 폐암 진단을 받고서야 출소했다.
한국 사회가 정신질환·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돌봄 및 치료와 지역사회 내 생활 지원을 외면하면서, 그 결과 죄질과 상관없이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이어지는 야만적인 형태의 제도로 고착화됐다.
치료감호소 수용자인 장수철(가명)씨가 올해 초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엔 다음과 같은 호소가 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점은 언제 나갈 수 있다는 기약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사에 기준도 없어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구별도 없고, 알 수가 없습니다."
오한수씨와 윤준형씨가 애초 치료감호소에 수감됐던 것도 '돌볼 가족'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그 때문에 쉽게 나오지도 못했다. 한수씨는 노모 한 명, 준형씨는 지적장애가 있는 부모가 있었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치료감호소 수용자 1,016명 중 수용 기간이 5~10년인 경우는 259명(25.5%)에 달했고, 10년 이상도 74명(7.3%)이었다. 치료감호 상한선이 15년인 심신장애인(1호)과 정신성적장애인(성도착 등·3호)은 평균 수용 기간이 각각 5년 9개월, 8년 5개월이었다. 최대 2년까지 치료감호가 가능한 약물중독자(2호)는 평균 수용 기간이 9개월이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치료감호소 재소자들의 장기수용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용자별 형량과 수감 기간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치료감호소로부터 ‘교정 관련 사항으로 공개시 직무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비공개 통보를 받았다.
최장 치료 가능 기간(15년)을 마치면 '종료', 그 이전에 먼저 출소하면 '가종료'이다. 치료감호는 검사가 청구해 법원이 결정하는데, 법원은 판결문에 치료감호 기간을 명시하지 않는다. 이런 부정기(不定期) 구금이 정당화되는 건, 치료감호가 형식상으로 과거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미래의 치료 필요성과 재범 위험성을 근거로 내려지는 ‘보안처분’이기 때문이다.
6개월마다 이뤄지는 가종료 심사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정신과전문의가 주축인 치료감호소 내 '진료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 가종료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선 환자 상태, 치료 정도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보통 "형기도 지나고, 상태도 안정돼 집이나 민간 정신병원에 가도 적응하겠다"고 주치의가 판단하면 심의에 올린다. 피치료감호자 당사자나 보호자가 직접 신청해도 심사를 볼 수 있다.
최종 결정은 법무부 산하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내린다. 치료감호심의위는 위원장인 법무부 차관과 판사, 검사, 법무부 고위공무원,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 6명에 정신과전문의 3명으로 구성된다. 법무부는 본보의 치료감호심의위 명단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도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치료감호법엔 가종료 기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동법 시행규칙에 ‘연령·건강상태·경력·가족관계·가정환경·범죄경력·치료 경과·준수사항 이행 여부·그밖에 필요한 사항’이라는 포괄적인 기준만이 나열돼 있다.
징역형과 마찬가지로 치료감호도 실상은 자유 박탈 처분임에도, 훨씬 허술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자의적 심사가 이뤄질 위험이 있는 이유다.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 결정 과정은 어떨까. 심의위원으로 활동한 적 있는 한 현직 법관은 "판례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보니, 다른 위원들의 분위기나 본인의 평소 감(感)으로 심사한다"고 말했다.
전직 법무부·치료감호소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은 '심사가 분위기를 탄다'는 것이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나 특정 범죄 유형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악화하면, 그에 해당하는 수용자는 웬만해서 안 내보려는 경향이 생긴다고 한다. '치료가 다 됐어도 상해는 최소 2년, 방화는 3년은 지나야 심사를 봐준다'는 식의 말도 치료감호소 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치료감호에 의한 자유 박탈의 부당한 장기화(2016)' 논문은 "(저지른) 죄의 최고 법정형보다 오래 치료감호를 받거나, 타인보다 더 가벼운 죄를 짓고도 더 오래 치료감호를 받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개별적인 치료감호 기간을 두지 않고, 치유 상태보다는 과거의 범죄 내용이나 경제력, 인수 보호자 유무를 우선시하는 심사기준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법무부의 연구용역으로 부경대 연구팀이 실시한 '치료감호제도 기간의 적정성에 관한 연구'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연구팀은 “정신장애 유형이나 죄질, 형량에 차이가 있음에도 상한선을 일률적으로 15년으로 정하고 있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법으로 판단 기준을 확실히 밝히고, 장애 및 범행 유형에 따라 치료감호 기간을 개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절대적 심사량이 많다 보니, 진료심의위를 1차로 통과한 30명 안팎의 ‘대상자’만이 철저한 집중 심사를 받게 되는 구조도 문제다.
지난해 치료감호심의위가 살핀 가종료 심사 건수는 1,961건(종료 심사 포함시 3,197건)이었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만, 한 달에 한 번 3시간 정도 진행되는 회의에서 163건(종료 심사 포함시 266건)을 심사해야 한다는 소리다.
치료감호심의위원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보통 회의 4, 5일 전에 법무부에서 (대상자) 기록을 보내오는데 양이 굉장히 많다. 주말 이틀 내내 읽어가곤 했다”고 설명했다.
진료심의위에서 가종료 의견을 받은 ‘대상자’는 법무부 사안조사 공무원의 면담보고서, 정신감정서 등을 바탕으로 심사받는다. 반면, 진료심의위를 통과하지 못한 '비대상자'는 증상과 치료 의견이 간단한 메모 형식으로 적힌 1쪽짜리 동태보고서로 심사받는다.
휴대폰을 빼앗으러 하는 등 준강도 혐의로 치료감호소에 갇혔던 자폐성 장애인 이모(24)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작년 말 치료감호소 관련 기자회견에서 “인신구속이 동반되는 치료 기간을 결정하는 데 ‘효율성’을 따지는 게 말이 되냐”면서 “진료심의위를 통과 못 해도 제대로 정신감정을 받고 충실한 심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지난해 3월과 10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동일한 1쪽짜리 동태보고서로 심사를 받았다고 한다. "심사 때 사용되는 자료가 이렇게 부실한데 어떻게 다른 결과가 나오겠냐"고 최 변호사는 반문했다. 형기(1년 6개월)의 2배인 33개월을 수용시설에 갇혔던 이씨는, 서울고법이 ‘발달장애 특성을 고려해 심사하라’는 권고를 내리고서야 올해 1월 풀려났다.
모든 수용자가 반년마다 심사를 받는 구조적 상황을 고려할 때, 충실한 심사를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6년 “치료감호심의위가 물리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건수를 한꺼번에 심사한다”며 “일반 정신병원의 평균 재원 기간을 크게 초과해 수용된 경우 가급적 제3의 독립된 심사기관을 통해 계속 수용 여부를 감정하도록 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가족 손에만 돌봄을 맡긴다면, 장기수감 문제는 영원히 풀 수 없다.
치료감호소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종료된 인원(263명) 중 절반(131명, 49.8%)이 민간 정신병원 등 시설로 연계됐고, 교도소로 이송된 경우는 36.9%(97명)이었다. 보호자가 있어 지역사회, 즉 집으로 간 경우는 13.3%(35명)에 불과했다. 기간을 넓혀서 봐도,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퇴소한 2,811명 중 보호자 인수는 1,024명으로 36%뿐이다.
치료감호소에서 5년간 일한 차승민 정신과 전문의는 민간 병원 연계에 대해 “(출소 이후) 보호관찰 3년 동안 문제가 생기면 가종료가 취소돼버리니, 환자도 적응할 시간을 갖고 보호자 역시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의료기관 등 사회적 돌봄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치료감호소에서 직접 출소가 임박한 환자가 지낼 곳을 찾아줘야 할 때도 있다.
정신질환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까지 앓는 환자가 있었는데, 가족의 인수 거부로 치료감호소에서 14년 넘게 있었다고 한다. 전국 병원에 입원을 문의해도 전부 거절당했는데, 사회복지사가 노력해 입소 가능한 에이즈 환자 생활시설을 겨우 찾아냈다. 그는 환자가 퇴소 후에도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기초생활수급·장애인 등록 신청을 돕고, 담당 보호관찰관에게도 사전 안내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수용자에 대해 이런 지원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치료감호소장)은 "가족의 지지기반이 미약한 환자들은 병원 연계나 자립 지원을 하지만, 사회사업실 인원이 적어 굉장히 힘들다"고 밝혔다.
당장 탈시설 생활·돌봄 체계를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정신의료기관이나 기존의 민간 정신병원을 치료감호소 퇴소자의 사회 복귀 전 '중간 치료기관'으로 삼자는 제안도 있다.
아직 범법 심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돌봄·관리 체계가 미흡한 현실에서, 중범죄자의 출소 여부는 엄격히 심사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치료감호심의위원을 지낸 김종철 변호사(전 대한변협 인권이사)는 "위원회가 가종료 결정을 했는데, 만약 1년 내로 유사 범죄나 다른 범행을 하면 그건 잘못된 결정 아니겠냐"며 "그래서 재범 가능성을 많이 봤고, 특히 방화나 소아 성범죄처럼 피해가 극심한 범죄는 더욱 엄격히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치료감호소 근무 의사는 “안인득 사건도 그렇고 결국 범죄가 발생하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약자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피치료감호자) 인권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재범 방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는 쉽사리 가종료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범죄를 저지르고도 장기간 수용되는 문제, 치료 효과가 더는 없는데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갇혀 지내는 문제는 '지역사회 내 관리 체계'를 개선해서 분명히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미 치료감호소는 과밀수용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하기 어려운 환경인데다, 폐쇄병동에 장기간 수용될수록 도리어 '시설화 증후군'으로 인해 사회 적응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최정규 변호사는 "인력 부족과 발달장애인 관련 전문성 부족으로 제대로 된 보호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장기간 세상과의 단절로 적응의 어려움을 안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 피치료감호자들을 생각해보면, 과연 현행 치료감호제도가 ‘재범 방지’와 ‘사회 복귀 촉진’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치료감호의 눈물
<1>프롤로그: 기자가 마주한 비극
<2>발달장애도 ‘치료’가 되나요
<3>치료받지 못하는 치료감호소
<4>최장 15년, 언제까지 가두나
<5>치료감호 수장이 전하는 현실
<6>출소 후 공백, 누가 채우나
<7>처음부터 방치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