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이 2% 중반까지 주저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반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기존보다 두 배 이상 높였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고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 소용돌이’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S-공포’ 경보음이 요란하지만 물가 안정 총력전에 나선 정부의 물가 대책은 구색 맞추기식 '재탕' 정책에 그쳐 불붙은 물가 상승세를 잡기엔 역부족일 거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6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2.6%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3.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과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 사태, 국제원자재가격 급등 여파로 성장률을 낮춰 잡았다. 이에 따라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이듬해 반짝 성장(4.0%)했던 한국 경제는 다시 2%대로 주저앉을 공산이 커졌다.
둔화하는 성장세와 달리 물가는 4.7%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됐다. 기존 전망(2.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이대로 나타난다면 외환위기 국면이던 1998년(7.5%) 이후 2008년과 함께 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해가 된다.
수정된 경제 전망을 두고 전문가들은 정부 역시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높게 본 것으로 평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 유가 등 공급비용 상승 충격으로 한국 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들어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주요 기관 역시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3.0%에서 2.7%로 떨어트리고 물가는 2.1%에서 4.8%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 역시 성장률 전망치(3.0%→2.7%)는 낮추면서 물가상승률은 상향(3.1%→4.5%)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는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진화 카드를 여럿 꺼내들었다. 우선 다음 달 종료되는 유류세 30% 인하와 액화천연가스(LNG) 할당관세(0%) 적용 기한을 연말까지 연장한다. 하이브리드 차량 구매 시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감면 기한과 읍·면 지역 아파트 관리비(전용면적 135㎡ 이하)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기간을 2024년 연말까지 2년 더 늘리기로 했다.
올해까지 면제하는 기저귀·분유에 대한 부가세도 영구히 부과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달 종료되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심사 수수료 30% 감면 연장도 추진한다. 제품 비용 상승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시행 중인 조치의 ‘재탕’인 데다, 체감도 역시 크지 않아 다급한 정부가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장 기저귀·분유 부가세 면제만 해도 이미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다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부가세 면제에 관한 소고’ 보고서에서 “2009년 부가세 면제 이후 기저귀·분유 가격이 다시 오르는 등 부가세 면제가 가격 인하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HACCP 검사 수수료 인하가 물가안정에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HACCP 심사를 전담하는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의 소규모 업체 대상 수수료 30% 감면 조치에 따라 올해 1~5월 감면된 수수료는 2억1,859만 원에 불과하다. 향후 대상이 확대될지 아직 정해진 바 없지만, HACCP 검사 수수료가 제품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힘든데도 물가 진정에 큰 효과를 낼 것처럼 포장했다는 지적이다. 유류세 인하·LNG 할당 관세 연장 역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진정되지 않는 이상 체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경제가 위축될 거라고 우려하면서도 올해 취업자 수가 기존 전망(28만 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2년(61만8,000명) 이후 최대 규모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1~4월까지 97만 명이 늘어난 만큼 하반기에 경기가 둔화돼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상수지 역시 450억 달러 흑자를 내다봤다. 당초 800억 달러 흑자 전망보단 줄었지만, ‘쌍둥이(경상+재정수지) 적자’는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가 고용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당분간 고공행진이 예고된 국제 원자재 가격으로 경상수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높고, 해외여행 재개와 해외투자수익 감소로 서비스수지 적자 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예상과 달리 4월 경상수지 적자가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며 “고환율·고유가 등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