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정치' 의심 악순환 반복...尹도 인정한 '영부인 없는 대통령실' 리스크

입력
2022.06.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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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인으로서 안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역할과 행보에 대한 고민을 처음 드러냈다. 대선후보 시절 '영부인 없는 대통령실'을 공약했으나, 김 여사가 사실상 대통령의 '정치 파트너'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 김 여사가 '조용한 내조'를 벗어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후 윤 대통령의 발걸음은 꼬이는 모습이다.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공식 기구가 없다 보니, 김 여사의 활동마다 '비선 정치' 의심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바엔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을 파기하더라도 공적 보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낫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2부속실 사라지자… 좌충우돌 반복

최근 대통령실에서 관심의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김 여사에게 쏟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김해 봉하마을 권양숙 여사를 예방할 때도 동행한 '십년지기' 친구가 엉뚱하게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인은 충남대 무용학과 겸임교수임에도 무속인이라는 루머가 나돌자 대통령실이 부랴부랴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정해야 했다. 윤 대통령도 이날 출근길에 "사진에 나온 분은 저도 잘 아는 제 처의 오래된 부산 친구"라고 해명했다.

이날은 김 여사의 봉하마을 일정에 동행한 대통령실 직원 3명 중 2명이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의 직원이었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전두환 옹호 발언'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려 '국민 조롱'이냐는 비판을 받았는데, 해당 SNS 계정 관리를 코바나컨텐츠 소속 직원들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다른 대통령의 경우에도 가까이 두고 일하는 분은 원래 오랫동안 일했던, 잘 아는 편한 분들을 대통령실에서 같이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같이 일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실에 채용된 분들은 그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확인했다.

김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의 돌출 행동도 대통령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희사랑 회장인 강신업 변호사가 김 여사의 미공개 사진을 공개하고, 자신을 비판한 시사평론가나 여권 정치인에게 거친 말을 공개적으로 내뱉었다. 김 여사 팬클럽이 비선 논란을 거듭 자초하면 정권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당 내에서도 나온다.


김 여사 이슈마다 한 박자 늦는 대통령실

문제는 김 여사 관련 논란에 대응할 때마다 '한 박자' 늦는 대통령실 업무 구조다. 제2부속실을 폐지한 후 부속실 내에 김 여사를 보좌할 담당자를 두긴 했으나, 역할도 모호하고 부서 간 원활한 소통도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여사의 일정을 어디까지 관리해야 할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김 여사 측에서 선제적으로 알려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부활'을 당장 고려하진 않는 분위기다. 김 여사가 대선 기간 학력·경력 부풀리기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직후 윤 대통령이 '영부인 없는 대통령실'을 꺼냈던 만큼, 공약 파기의 부담이 크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날 "저도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인 만큼, (영부인 역할 논란을) 어떤 식으로 정리해서 해야 할지 차차 생각해보겠다"며 여지를 뒀다.


"공적 영역에서 책임 있고 투명하게"가 우선

과거 청와대에서 관련 업무를 해본 정치권 인사들은 영부인 보좌는 '공적 영역에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제2부속실장을 지냈던 정병국 전 의원은 "당시 손명순 여사를 보좌했던 제2부속실 직원도 2명 정도로 단출했다"며 "별도 기구나 인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적 라인에서 영부인의 일정과 메시지를 책임지는 원칙을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부인의 활동은 기획하기 나름"이라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팀을 꾸리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