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울산의 한 특성화고에서 1학년 남학생이 50대 여교사 A씨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반 소속이었던 가해 학생이 종례시간에 교사 A씨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교실에 앉아 있자 A씨가 “나가라”고 요구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남학생이 무릎으로 A씨의 배를 걷어찬 것이다. 교사는 병가를 내 치료 중이고 가해 학생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수십 명의 제자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담임교사가 폭행당한 심각한 사건인데도 가해 학생의 잘못은 학생부에도 기재되지 않는다. 학생 간 다툼인 학교 폭력과 달리 교사에 대한 폭행은 학생부에 기재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교사 상해ㆍ폭행 사건만 해도 매년 100~200건이 발생한다. 신장된 인권의식에 부합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책임의식 미성숙, 권리 구제를 위한 소송 증가 등 교육환경 변화와 맞물리면서 교권은 끝갈데 없이 추락하고 교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교육당국도 교권침해 피해 교사에 대한 심리치료와 소송지원 등 보호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만 최근 치러진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교권강화’를 중시해온 보수 교육감들이 약진하면서 교권보호의 전환점이 될지 교육계는 주목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금언의 빛이 바랜 지는 오래다. 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2,000건 이상 보고됐던 교권침해 사례는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 전년의 40% 수준인 1,197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2,269건으로 예년 수준으로 반등했고 전면 등교가 시작된 올해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원단체들은 교육부의 공식 통계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한다. 교육부 통계는 교원에 대한 상해ㆍ폭행ㆍ협박 등 정도가 심각해 각 학교의 학교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에서 심의된 사례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피해는 4~5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각 시도교육청에서 제공하는 교권침해 피해 교사 상담건수는 1만3,621건으로 교육부 공식 통계의 5배 이상이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수업방해, 폭언 등으로 교권 침해가 발생해도 외부로 알리지 않고 상담을 신청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들의 학령이 낮아지는 현상도 뚜렷하다. 중ㆍ고등학교의 교권침해는 감소세인 반면 2014년 42건이었던 초등학교 사례는 지난해 216건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최근 10년간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 강화 등 관련 법제가 강화된 점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교사의 훈육에 앙심을 품은 학부모 등에 의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교사의 명백한 아동학대 행위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정당한 훈육도 학대로 신고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학교폭력으로 자녀가 신고를 당하면 보복성으로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거나, 중고등학교에서 생활기록부 기록을 언급하면서 생활지도를 하면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교사 경력 20년 이상인 서울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사 B씨는 숙제를 제출하지 않은 아동에게 교실에서 “숙제를 잘 해 오세요”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일과 후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 따로 불러서 조용히 타일러 달라”는 학부모의 전화를 받고 “알겠다”고 답했으나 학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B씨가 조사받는 동안 아이는 매일 등교했다. 교육권 보호 차원에서 교사와 분리가 되지 않기 때문. B씨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려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무혐의 결정이 나왔지만 B씨가 실추된 명예를 되돌릴 수 있는 제도는 전무하다. 정혜영 한국노총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서울 강남초 교사)은 “이런 경우 교사 개인이 무고죄로 학부모를 고소해야 하는데 소송까지 진행하는 교사는 거의 없고 학교장 허가로 특별휴가 5일을 쓸 수 있는 게 전부”라고 꼬집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교권침해 저연령화 추세와 관련이 깊다. 2016년 4만9,623명이었던 ADHD 학생들은 2020년 7만8,958명으로 크게 늘었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가정의 충분한 양육을 받지 못한 정서불안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중학년, 고학년에서는 저학년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정서불안이 사춘기와 겹치면서 친구들에 대한 폭력 행위, 교사에 대한 폭언, 폭행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도 증가세다. 한국교총이 지난해 교권침해 상담을 의뢰한 437건을 분석한 결과 학부모에 의한 피해는 33.87%(148건)로 학생에 의한 피해(13.04%, 57건)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정당한 권익 찾기 수준을 넘어서는 악성민원 제기 등으로 교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 경기지부 교권국장인 이상우 경기 오산 금암초 교사는 자기욕구 표현에 솔직한 1980년대생 학부모들의 등장을 주목한다. 학교와 교사의 권위를 존중했던 이전 세대 학부모들과 달리 이 세대들은 학창 시절 겪었던 교사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현 교사들에게 투사해 권리를 주장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1980년대생 학부모들은 법적 지식을 갖추고 있고 SNS를 활용한 집단적 권리 주장에 익숙하다”며 이 세대 학부모들의 아동학대에 대한 다소 과잉된 감수성이 교권침해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봤다. 송효준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은 “공교육에서도 수요자 중심 교육, 교육서비스 관점이 강조되고 자녀 수가 적어지면서 자녀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과거보다 커졌다”며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요구사항이 많아졌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민원을 제기하고 교권 침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풀이했다.
2010년 경기도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의 확산 등 학생인권을 강조하는 분위기와 교권침해 증가가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성인 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교육여론조사에서 ‘교원의 교육활동 침해 이유’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학생인권의 지나친 강조’(36.2%)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학교 현장의 반응도 엇갈린다. 박정현 인천 만수북중 교무부장은 “학생인권조례의 취지는 나쁘지 않았으나 아이들에게는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자율성이 주어지면서 교사들의 생활지도권이 제한됐다”며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시도에서는 학생지도 자체를 아예 포기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민석 전교조 교권 상담국장은 “학생의 권리의식이 고양돼 과거의 통제방식으로 지도하기가 어려워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 교육의 핵심 목표를 민주시민 양성으로 본다면 학생인권 강화가 교권침해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시각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실제 학교에서 교권 강화와 학생인권 강화가 상충된다고 느끼지 않는다”면서 “다만 학생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때 어떤 절차로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희규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사범대학장)는 “교권보호와 학생인권보호를 대립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교사는 교사다운 품성을 갖추고 전문성을 강화해 권위를 세우고 학부모들도 학교의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간섭이 되지 않도록 해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면 교권과 학생인권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권침해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교육당국도 잇따라 교사보호정책을 내놓고 있다. 교권침해 학생에 대한 선도조치, 분쟁조정 등의 역할을 맡은 교권보호위원회의 학교별 설치가 의무화(2021년)됐고 시도교육청에 피해교사 상담을 위한 교원치유지원센터가 만들어진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치들이 2019년 교원지위법 개정과 함께 시행되는 등 걸음마 단계라 실질적으로 이 제도들이 교권을 보호하는지는 물음표다.
예컨대 명백한 교권 간섭행위가 벌어져도 학교장이 교보위 소집을 미루는 등 현장 관리자들이 교사의 교권을 보호하는 문제를 경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교보위는 학교장, 재적위원 4분의 1 이상의 요청 등으로 소집되는데 대체로 학교장 재량에 소집 여부가 좌우된다.
최근 서울에서는 학교폭력사안처리에 불만이 많았던 한 학부모가 교사에게 “닥쳐. 당신이 선생이냐? 교육청에 담임 교체를 요구하겠다”고 폭언을 퍼붓자 교사가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해 교보위 개최를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장은 이 사안이 ‘폭행ㆍ상해ㆍ협박 등 교원지위법상 교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소집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학교 차원에서 사안을 은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에 교보위를 설치하는 등 제도 개선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교사의 교권 보호에 가장 앞장서 실천해야 할 사람이 학교장이지만 법으로 보장된 교권보호 의무이행에 소극적”이라며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부터 성폭력이나 4주 이상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폭행 등 중대한 교권침해 피해를 당할 경우 시도교육청은 관할수사 기관에 가해자를 고발하도록 돼 있으나 실제 고발된 사안은 2020년 3건, 지난해 10건(5건은 동일 사안)에 불과하다. 교육청부터 일선학교까지 교권피해 해결에 소극적인 풍토가 만연해 있는 셈이다. 교권침해 피해 교사의 심리를 상담 및 치료지원하는 교원치유지원센터도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장학사를 포함해 보통 1개소당 3, 4명으로 운영되는데 이 중 상담사가 1명뿐인 곳이 대다수로 전문성 부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지난 6월 전국시도교육감 선거에서 보수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교육계는 교권침해에 대한 고강도 대응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선거기간 중 이재정 전 경기교육감의 상벌점제 폐지를 강하게 비판했던 임태희 경기교육감 당선인이 가장 구체적인 교권보호 공약을 내놨다. 교권보호위원회의 교육지원청 이관, 교원치유센터 확대, 학교규칙 사항에 대한 교육청의 지나친 간섭배제, 다수 학생학습권 보장을 위한 전문상담교사, 사회복지사 배치 등을 제시했다. 한국교총 출신인 윤건영 충북교육감 당선인도 교원배상책임 보험을 통한 교권침해 소송비용 지원 확대, 교권침해 자문변호사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대체로 교권침해 피해를 본 교사들에 대한 중장기적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보성향이지만 3선에 성공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중기과제로 교권보호책임관 신설을 검토 중이다.
교육부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 1억7,000만 원이던 교권보호 관련 예산을 올해 19억 원으로 늘리는 등 교원보호책 내실화에 노력 중"이라며 "내년 시행을 목표로 교권보호위원회 위상 강화 등 시행령 개정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