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잡아 보셨는지. 뼈가 통풍에 걸린 듯 아프게 인생의 허무를 가르치는 전도서는, 유독 다음과 같은 문학적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망하다.' 궁금하면 기네스북 도전을 위해 운동장에서 바람을 잡으려 두 손 벌리고 뛰어 보기를 바란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허무가 무엇인지 잘 느끼게 될 것이다. 잡히지 않는다.
인생의 전성기를 맞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이 최고로 발휘되고 그 결실을 풍성히 누리는 이들이다. 뒤처지던 시기에는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전성기를 맞으면 주변은 오히려 자신에게 주목하기 시작한다. 자연히 전성기의 사람은 스스로 신화가 되고 만다. 더는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언은 경고한다.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잠언 16:18) 고대 이스라엘의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격언이며, 2,000년 이상 하늘의 지혜로 여겨진 명언이다. 성공을 맛보아 교만하면 패망이 따른다는 것이 거의 수학 공식과 다름없다.
애초에 성공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인생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그렇게나 허망하진 않을 것이다. 일상이 늘 바람 잡듯 했다면 익숙할 것이다. 허망은 특히 성공하고 누리는 자들의 몫이다. 가지고 누리던 것을 잃는 것처럼 아픈 것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못된 짓은 줬다가 뺏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는 바람을 잡는 허무가 특히 누구에게 임하는지 열거해 놓았다.
이루려고 애쓰고 성취를 맛본 이의 쓰라린 고백이다. 그런데 교만은 땀 흘려 성공한 이들에게만 있지 않다. 하늘에 닿는 바벨탑처럼 인간의 지적 욕구가 쌓는 상아탑도 거만하기 그지없다. 이 또한 바람 잡는 일임을 이처럼 말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바람 잡는 것과 같다.
죽으려던 사람도 벌떡 일으켜 세우는 성경의 메시지 가운데 이런 글이 있다니, 이 또한 참으로 허무하다. 동양의 도교와도 많이 비교 연구되는 전도서는, 어쩌면 신앙과 삶의 열정으로 자칫 과열된 사람들에게 냉각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코로나로 억압됐던 몇 년이 지나자 사회는 다시 활개를 되찾고 있다. 하늘을 나는 전성기의 주연이 되려는 듯, 다들 앞으로 튀어나갈 태세다. 이들에게 자중하라며 바람 잡는 허무를 가르치는 전도서는, 왜 당신의 열정이 허망할지 근본적인 두 이유를 밝힌다.
첫째, 죽음이다.
죽음은 나라를 구해도 피할 수 없고, 죽음은 왕도 빈손으로 만든다. 둘째, 욕심이다.
아무리 가지고 이루어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당신의 배는 언제나 고플 것이다. 값비싼 거울에 비치는 당신은 늘 영양실조 환자다.
바람을 잡아 보아라. 절대 잡히지 않는다. 욕심을 잡아 보아라.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