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도 병원도 아들 못 받는다니..." 발달장애인 엄마, 벼랑 끝 서다

입력
2022.06.15 11:00
[치료감호의 눈물]
<2>발달장애도 ‘치료’가 되나요
중증 자폐성 발달장애인, 받아주는 병원 없어
웬만한 시설과 병원들 전화 안 해 본 곳 없고
자립 훈련 위해 눈총 받으면서도 아들과 외출
24시간 지원 체계,  이들 가족에겐 생존 문제

"결국 아들과 한강에 뛰어든다면 오늘이 기자님과의 마지막 만남일 수 있어요."

중증 자폐성 장애인 임동균(23·가명)씨의 어머니 유명숙(59·가명)씨가 지난 4월 11일 서울 자택에서 기자와 두 번째 만나 한 말이다. 웃으며 말했지만, 아주 농담일 수는 없다. 불과 지난달 23일만 해도 서울 성동구에서 40대 여성이 발달장애를 가진 6세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같은 날 인천에서도 60대 모친이 30대 중증장애인 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4월에 만난 명숙씨는 힘겨워하고 있었다. 10개월간 동균씨를 돌본 병원에서 동균씨를 버거워해 끝내 퇴원을 통보했고, 갈 곳이 없었다. "아들에게도, 병원에도 ‘조금만 더 버텨 보자'고 간청했지만 이제는 한계"란다. 명숙씨는 “병원에 빌어서 이틀의 말미를 벌었지만 그사이에 지낼 곳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했다.

시설도 병원도, "받아줄 수 없다"

애초에 국내에 자폐성 장애인 전문 시설·병원이 거의 없거니와 증상이 심하고 소통이 어려운 중증 자폐성 장애인은 시설에서도 기피 대상이다. 명숙씨는 “근처인 송파구부터 연천, 화성, 용인, 목포, 익산, 전주까지 알아봤지만 다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동균씨는 행인을 넘어뜨리는 등의 행위로 구치소와 치료감호소를 들락거린 '범죄자'로 인식돼 입소를 허락받기가 더 어렵다.

동균씨는 장기 입원으로 많이 지쳤다. 아들을 위해서도 명숙씨는 다시 직접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이웃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고, 피해자들에게 줄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더 싼 집으로 옮겨야 한다. 전남의 한 임대 주택에 입주하기로 했다. 다행히 기초생활수급 가정이라 주거와 치료 지원을 받고 있다.

4월 만남 이후 3주쯤 지나 다시 연락했을 때, 그나마 명숙씨는 한숨 돌린 상황이었다. 명숙씨가 "조금만 퇴원을 더 미뤄 달라"고 병원에 다시 한번 애원했지만 동균씨에게 시달려 온 의료진은 “더는 못 한다"며 강경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동균씨 사정을 알게 된 서울보호관찰소 측이 병원장과 직접 면담한 끝에, 가까스로 동균씨의 잔류가 허락됐다. 이참에 동균씨의 병실 층이라도 옮기자는 조건이 붙었다. 병실 층이 바뀌는 과정에서 동균씨가 그간 마찰이 잦았던 6층의 한 환자와 떨어지게 됐고, 동균씨 문제 행동이 극적으로 나아졌다. 애초에 발달장애인의 행동패턴을 분석하고 병실 변경 등을 적용했다면 진작에 나아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명숙씨는 "아들이 아직까진 잘 버텨 주고 있다"며 "한 달여는 머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명숙씨는 전국을 뒤진 끝에 전남 영암군에 있는 한 임대 아파트로 6월 8일 이사했다.

낯선 곳에서 모자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동균씨를 홀로 돌볼 명숙씨에겐 또 얼마나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까.

부모도 발달장애인 자식이 두렵다

명숙씨는 앞서 "솔직히 아들과 같이 살 생각을 하니 두렵다"고 털어놨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몸으로 일으키는 온갖 공격적 행동을 60대 여성 혼자 감당해야 한다.

특히 한밤중 돌발 행동을 자주 일으키는 동균씨를 막기 위해 명숙씨는 밤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자거나 뜬눈으로 지새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껏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조차 신청해볼 생각도 못 해봤다. “누가 우리 아들을 돌보고 싶겠어요. 저도 무서운데.”

자폐성 장애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동시에 가진 아들 류인서(20)씨 어머니 복성옥씨와,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이윤호(23)씨를 둔 김남연(55)씨 역시 비슷한 사정을 털어놨다. 이들은 "아이와 엄마 모두 신체적 위기 상황에 자주 놓인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인서씨는 종종 무릎을 바닥에 세게 내리치면서 꿇는 자해 행동을 보인다. 무릎에는 시커먼 멍이 들고, 아파서 당장 걷지 못할 때도 있다. 그때 성옥씨가 흥분 상태인 아들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들이 정말 다리를 못 쓰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 뿐이다.

가족들도 동시에 신체적 위험에 노출된다. 성옥씨는 "(아들이 흥분하면) 엄마와 누나 머리채를 잡아당겨서 머리카락이 온 바닥에 흩뿌려지는 일도 부지기수"라며 "머리카락이 뽑히는 건 둘째 치고, 머리채가 한 번 잡히면 어디로 내던져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남연씨 역시 "아들이 코로나19로 인해 2주간 격리될 당시 공격 행동이 심해졌고, 그때 엄마를 많이 때렸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서워하며 매일 아침 눈 뜨는 감정이 고통스럽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 가정에서는 '차라리 치료감호소에 다시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을 정도다. 성옥씨는 "그 마음을 백번 이해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중증일수록 지원 더 없어

발달장애 수준이 심각할수록 오히려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에서 멀어진다. 성옥씨는 "아들이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던져서 아수라장을 만들고, 화가 나면 사람을 공격하는 등 행동이 심하다"며 "아무리 좋은 방과후 서비스 제도가 생겨도 조별 활동이 불가하니 이용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남연씨의 아들 윤호씨는 도전행동 증상이 있어서 기존에 이용하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걸으려고 하거나, 차도로 뛰어들려는 위험한 시도까지 한다. 그나마 남성 활동지원사가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인데 활동지원사는 대부분 여성이다. 결국 이씨의 이모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씨 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다.

중증 발달장애인은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도 잦다. 인서씨는 특수학교에 다니던 중학생 무렵,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 문제가 심하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수업을 받지 못하고 사회복무요원과 단 둘이서 별도의 공간에 갇혀 있어야 했다. 심지어 사회복무요원으로부터 신체적 강압을 당하면서 류씨는 이후 사회복무요원과 비슷한 옷차림의 행인만 보면 공격하는 등 행동문제가 악화됐다.

윤호씨는 초등학교 등교를 거부당했고, 특수학교 자리도 없었다. 남연씨는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대만 근무를 따라갔지만 대만의 한국인 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없었다. 김씨는 안 쓰는 교실 한 칸을 빌리고 교사를 따로 고용해야 했다. 특수교육 자격증조차 없는 교사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루 3시간 가르치는데 월 150만 원씩, 국내 특수학교에 자리가 날 때까지 꼬박 1년 6개월간 직접 교사 월급을 지급했다.

"아들 치료법 찾아다닌 비용 집 한 채 값"

직접 교사를 고용해야 했던 남연씨의 경우처럼, 발달장애인 가정은 맞벌이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교육비나 치료비가 별도로 들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심각하다.

성옥씨 모자는 최근까지 민간 시설을 전전하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민간 시설·전문가는 수십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부르는 게 값이다. 성옥씨는 "치료법이 맞는 곳을 백방으로 찾아 다닐 땐 월 지출이 500만 원을 넘겼다"며 "유명한 발달장애 전문가는 불과 몇 시간 면담·관찰하는 데도 20만 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성옥씨는 이어 "지금껏 쓴 돈을 다 더하면 족히 집 한 채 값은 될 것"이라고 했다.

남연씨는 아들 윤호씨를 구립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 보내는데, 월 29만 원이 든다. 이 외에 다달이 들어가는 장애인 활동지원 자부담금이 월 10여만 원이고, 외래 약값 역시 월 10여 만 원이다. 윤호씨가 받는 장애연금 월 33만 원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그나마 남연씨의 지금 지출은 양호한 편이다. 지자체 운영 센터를 다닐 수 있는 데다 외래 진료 역시 종합병원에서 10년 전부터 받아와서다. 남연씨는 "새로 진입하는 아이들은 외래 대기에만 3년이 걸리고, 지자체 운영 센터 수용 인원마저 적어 결국 민간 장애인 시설에 가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아들 범죄자 될까" 두려움도 가족 몫

장애로 인한 행동이 범죄로 오해받을까 봐 가족들은 늘 전전긍긍해야 한다.

윤호씨는 지하철을 타면 몸의 중심을 잘 못 잡는다. 남연씨는 알면서도 일부러 아들의 왼손에는 휴대폰을, 오른손에는 물병을 쥐어준다. 중심을 잡으려다 실수로 타인의 신체를 잘 못 잡아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것보다 차라리 넘어지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남연씨는 "함께 나가면 일부러 내가 '여기 잡으면 안 돼' '돌아다니면 안 돼'라고 크게 말해서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걸 시민들이 인식하도록 한다"면서 "그러나 아들 스스로는 대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인서씨는 동균씨가 치료감호소에 가게 된 범죄와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낸 적이 있다. 성옥씨는 "아이가 화가 나면 어린아이를 세게 밀어서 넘어지게 한다"며 "그로 인해 피해 아동 측에 욕도 많이 먹고 돈도 많이 물어줬다"고 말했다. 성옥씨 모자 역시 '시설에 집어넣지 왜 나와 있냐'는 비난을 듣는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 언젠가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인서씨를 집에만 둘 수 없다. 성옥씨는 "아들과 밖에 한 번 다녀오면 슬픔에 잠기지만 ‘너무 죄송하다'고 빌어서라도 음식점에 꾸역꾸역 간다"고 했다.

안전한 '24시간'을 위해 필요한 것

4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삭발식을 단행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은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24시간 지원 체계'를 두고 “그 시간에 부모는 뭐하냐”는 등 비난이 적지 않다. 이는 오해일 뿐이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우리가 주장하는 ‘24시간 지원'은 정말 24시간 내내 누가 붙어 있어 달라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지난 정부에서 정착시킨 △주간활동지원 서비스 △방과후 및 취업활동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확대하고, 아직 시범사업인 △거주 지원 사업을 정착시키면 발달장애인이 24시간을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우선 생업에 나서야 하는 부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낮 시간 활동 지원이 있어야 하고, 장애인들이 부모 없이도 살려면 나이대별로 방과후 교육과 취업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살 곳조차 없는 취약 가정에는 임대 주택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2019년 ‘정신질환 범죄와 치료, 복지의 결합을 모색하는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섰던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의가 치료감호 대상자의 통원치료가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고, 그를 돌봐줄 보호자가 있을 경우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강압 방식이 발달장애인들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만큼, 결국 근본적 해결방식은 돌봄 시스템의 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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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감호의 눈물

<1>프롤로그: 기자가 마주한 비극

<2>발달장애도 ‘치료’가 되나요

<3>치료받지 못하는 치료감호소

<4>최장 15년, 언제까지 가두나

<5>치료감호 수장이 전하는 현실

<6>출소 후 공백, 누가 채우나

<7>처음부터 방치하지 않기를

최은서 기자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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