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남편이 벌써 신고를 한 건 아니겠지.’
2018년 11월 6일, 자정을 향해가던 늦은 밤.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묘령의 여성 노라 셰리프(가명·현재 24세)가 탄 택시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향해 바삐 내달리고 있었다. 노라는 한 손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짙은 녹색 여권을 꼭 쥐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여행 직전이 되어서야 만든 빳빳한 여권이었다.
이 다급한 여자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라를 버릴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다. 수면제 2알을 넣은 음료를 마신 남편은 아직 호텔방에 곤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겨우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는데, 노라는 연신 초조한 모습으로 한국행 왕복항공권 예매 내역이 담긴 휴대폰 화면과 택시 룸미러를 번갈아 봤다.
전날 밤새 바깥을 쏘다니다 아침에 들어온 남편 칼리드 모하메드(가명·당시 28세)에게 “아침밥을 먹자”고 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답이 없는 남편에게 “혼자 조식을 먹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현관을 나서려는 찰나, 그가 분연히 일어나 성큼성큼 문을 향해 다가오더니 노라의 가녀린 목을 양손으로 졸랐다.
직업 군인인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몇 번을 발버둥쳤지만 46kg의 왜소한 신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목이 졸린 채 침대까지 질질 끌려간 노라의 눈에는 눈물이 한 가득 고였지만, 무자비하게도 칼리드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여기서 너를 죽여버리고 시체를 숨겨버릴 거야. 너희 가족들에게는 네가 도망쳐서 없어졌다고 말하면 그만이야!”
스스로 죽거나, 도망치거나. 노라의 눈에는 지금 당장 두 가지 선택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1년 넘게 이어진 남편의 폭행과 부부 강간에 언제든 목숨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던 노라였다.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았던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 그간 칼리드로부터 폭행당한 흔적을 휴대폰으로 모두 찍어 두기까지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계 회복을 기대하며 온 말레이시아에서까지 심각한 위협을 당하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다. 살아서, 도망쳐야겠다고.
어떻게든 말레이시아를 떠나야 했다. 이곳에서 머물다간 가출 신고를 받은 사우디 대사관이 언제 움직일지 모를 일이어서다. 이대로 조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 그 땅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길로 말레이시아 주변 국가 중 안전하면서도, 환승 과정에서 잡힐 염려가 없는 가장 빠른 직항 항공편이 있는 나라를 찾았다. 한국, 그중에서도 부산이라는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의 도망은 단순히 1년 반 결혼생활 동안 끊임없었던 가정폭력과 부부 강간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 생애에 걸쳐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조국에서 자신에게 가해졌던 온갖 박해와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노라라고 불러 주세요.” 지난달 23일, 서울 관악구의 한 모임 공간에서 만난 노라는 한국에 오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바꿔 버렸다고 했다. 사우디에서의 삶을 도저히 회상하고 싶지 않기에, 한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는 새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직접 갓난아기였던 노라가 ‘할례’를 받도록 했다. 이슬람 종교는 정숙한 여성이 음란해지지 않도록 하는 ‘교육방법’으로서 클리토리스를 절제하도록 한다. 성적 쾌감을 느끼기 힘든 여성의 신체는 오로지 출산의 도구로 여겨진다.
무심한 아버지는 폭력으로 가정을 다스렸다. 집안의 문은 언제나 꽁꽁 잠겨 있었고, 집안의 여성들은 니캅(눈만 내놓고 전신을 천으로 가리는 이슬람 여성 복식)을 덮는 것도 모자라 눈도 보이지 못하도록 했다. 심기를 거스르면 물도 주지 않고 40도가 넘는 뜨거운 바깥에 세워 두기 일쑤. '말대답을 했다' '기분이 좋지 않다' '6남매가 다툰다' 등 온갖 이유를 대며 부인과 자녀를 때렸다. 그러나 노라는 경찰에 신고는커녕 이웃에 도움을 청하지도 못했다. 작은 부족 마을 이웃들은 모두 아버지의 친족이거나 지인이었으며, 폭력이 그 집안의 훈육 방식이라 가벼이 여길 따름이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이었다. 타국 땅은 한 번도 밟지 못했지만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익히기를 좋아했던 노라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고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그 즈음 혼인 의사를 밝혀 온 남편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18세였다.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것이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에서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으로 옮겨 가는 것일 줄은 전혀 몰랐지만.
“한국에서 난민 면접을 받을 당시 왜 경찰에 가정폭력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제가 사우디에 있을 때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 없이 이동도 제한됐어요. 저는 결혼 전 부모님과 살 때는 집에 갇혀 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경찰을 찾아간다면요? 아마 경찰은 남성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거나, 다시 가족에게로 저를 돌려보냈을 겁니다.”
2시간 같은 20분이 지나고 겨우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지만, 노라의 출국은 순탄치 않았다. 이미 온라인 체크인을 끝냈는데도 항공사 직원들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하게 했다. 무리를 지은 직원들은 노라를 흘깃 쳐다보며 “도망가려는 것 같다”며 수군거렸다.
7일 오전 1시 55분에 이륙해야 할 비행기는 좀처럼 뜰 생각을 않았다. 아랍인 직원이 좌석에 앉은 노라에게로 다가와 여권 정보를 요청하고는 “왜 남성 보호자 없이 혼자 출국하느냐”고 물었다. 혹시 몰라 왕복으로 예매한 항공권을 보여 주며 노라는 되레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고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받아쳤다. 직원은 끝까지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출국 관련 서류를 잘 챙겨라”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그제서야 비행기는 활주로에 섰다.
‘아, 시원하다.’
몇 시간 뒤 김해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노라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시원하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부산의 바닷바람 탓이었을까, 혹은 해방감 때문이었을까. 사막 기후의 사우디에 익숙한 그녀에게 11월의 한국 날씨는 생경할 법도 한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전혀 춥게 느끼지 않았다.
노라는 머리에 칭칭 두르고 있던 히잡을 풀어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공항을 빠져나온 뒤 곧장 편의점으로 향한 노라는 대수롭지 않게 햄이 포함된 도시락을 하나 샀다. 조국에 있을 때부터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 이따금 기도를 하지 않았다. 히잡을 버리고 돼지고기를 먹을 마음의 준비는 얼마든 되어 있었다. 물론 사우디에서 그렇게 발설하면 배교죄에 해당해 사형에 처하게 되기에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다.
“맛있다!” 난생 처음 돼지고기를 한입 베어 문 노라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2018년 11월 7일, 그렇게 사우디 아라비아 국적의 20세 여성 노라 셰리프는 아무런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홀로 한국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2022년 5월, 서울의 한 대학가 인근 카페. 오전 11시가 되자 출근한 노라는 익숙하게 앞치마를 둘러매고 일과를 시작한다. 벌써 바리스타로 일한 다섯 번째 직장이다. 한국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셔 보았는데, 이제는 누구보다 능숙하게 원두를 다져 꾹꾹 누른 뒤 에스프레소 샷을 내려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만들 수 있다.
중년 남성 손님이 메뉴 중 ‘아메리치노’가 무엇인지 묻자, 노라는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를 합친 말인데, 거품이 많은 커피’라고 물 흐르듯 설명했다. 워낙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는 데다, 손님이 없을 때마다 카페에서 짬짬이 공부해 웬만한 한국어 의사소통은 매끄럽게 가능할 정도다.
카메라 앞에서 반짝반짝한 자신이 너무나 좋다는 그녀의 꿈은 모델이다. 노라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 멋진 포즈를 취한 사진이 ‘#촬영문의 #외국인모델 #모델구인’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여러 장 올라와 있다. 다만 현재 난민 신청자 자격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노라는 취업이 엄격하게 제한돼, 무급으로만 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서다.
“저는 모델이 되고 싶어요. 근로계약서 쓰고 당당하게 활동을 하고 싶어요. 연애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어요. 언제 한국에서 쫓겨날지 모르는데 누가 일을 시켜 주고, 저와 사귀겠어요. 저와 비슷한 사례인 라하프 알쿠눈(2019년 여성 억압을 피해 캐나다로 망명에 성공한 사우디 여성)의 모습을 SNS에서 보면 억울한 마음이 들어요. 나는 지금의 불안정한 생활보다 더 당당하고 확실하게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한국 생활 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요즘도 그녀는 일주일에 서너 번 악몽을 꾼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사우디로 돌아가는 꿈이다. 비행기에서는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가족들이, 본가에 도착하고 나니 모든 문을 잠가버린다. 그 꿈에서 노라는 하염없이 미친 사람처럼 출구를 찾는다.
노라에겐 이 악몽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난민 피난처와 난민을 지원하는 공익법센터 어필의 도움을 받아 2020년 9월 난민 신청을 했지만 같은 달 인정받지 못했고, 인도적 체류 자격(난민은 아니지만 인도적 이유로 자격을 갱신하며 체류할 수 있는 상태)조차 받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신론자이며, 가족으로부터 평생에 걸쳐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당한 것을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다.
나라를 버릴 수밖에 없어 한국에 온 이들은 난민 신청(G-1-5) 비자를 통해 한국에 머물면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하게 된다. 난민 인정 전까지 6개월마다 6만 원을 내며 체류자격을 연장해야 하고, 생계를 위해 취업을 할 경우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 수수료 12만 원을 지불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불안정’하고 ‘한시적’인 체류 연장이다.
당국이 밝힌 불인정 사유는 이렇다. ‘신청인(노라)은 공개적인 장소나 방송, 인터넷 등에 무신자임을 밝힌 적이 없고, 반이슬람 활동을 한 적도 없어 본국에서 종교문제로 주목될 가능성이 낮다. 부친 및 전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제출한 결혼계약서 또한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박해 관련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신청인에 대한 박해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바, 신청인은 난민법상 난민에 해당하는 자라고 할 수 없으므로 난민 불인정 결정한다.’
노라는 곧바로 난민 불인정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며 당국에 항변했다. “저를 조국에 넘겨주는 순간, (사우디 정부는) 제 여권을 가져가고, 영구적으로 외출이나 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감금하거나 움직임을 통제할 겁니다. 교육이나 일도 금지될 것입니다. 투옥된 뒤 사우디법에 따라 100번의 채찍질을 당할 것입니다. 저는 이슬람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성장하고 싶지 않으며, 미래의 제 아이들이 테러를 배우거나 종교를 강요받고 베일(히잡)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돌아가게 되면 가둬져 고문을 당하게 될 텐데, 저를 조국으로 송환하는 것은 저를 죽이는 시도일 겁니다.”
이의 신청이 끝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노라는 2차 신청과 행정 소송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절차를 밟게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는 이들은 기존 사회에서 박해를 당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비교적 여권(女權) 수준이 높은 한국은 이런 여성들을 난민으로 받아 주어야 할까.
‘아시아 최초 난민법 제정 국가’임을 자부하는 한국은, 그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난민 인정에 인색한 나라다. 한국일보가 5월 법무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94년부터 올 4월까지 난민 인정률은 1.6%(전체 신청 7만4,610건 중 인정 건수 총 1,194건)에 불과하다.
그중 여성 난민 인정자는 492명(배우자를 따라와 가족 결합된 262건 포함). 절대적인 수 자체도 극도로 적지만, 구체적인 박해 사유를 보았을 때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인정되어 난민 자격을 얻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종교(8.3%), 정치(13.4%), 인종(20.1%) 등 구체적인 박해 사유에 비해, 노라의 사례처럼 다양한 형태의 억압과 폭력 피해자들이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의 이유로 난민이 인정된 비율은 5.7%.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작 28명 만이 이 바늘 구멍을 통과했다.
젠더박해 피해자들은 남성 중심의 견고한 사회 전반에서 폭력과 피해에 노출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박해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급하게 본국을 빠져 나오느라 미처 서류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당국이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까지 심사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하지는 않는다.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법무부는 의사 소견서나 경찰조서 등의 직접증거 제출이 없으면 과거에 박해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다”며 “난민 심사 과정에서 난민 신청자들은 ‘자국에 법원도 있고, 경찰도 있는데 왜 신고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이는 신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박해자의 사회 종교적 배경과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했다.
혐오에 기반을 둔 가짜 뉴스가 한국 사회의 난민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모두 틀어막은 동안,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 그리고 자유의 박탈을 견디다 못해 나라를 떠나 이 땅에 도착한 이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젠더박해 피해자’다.
※ 본 기사는 노라의 2020년 난민 신청 당시 면접 조서와 불인정 이의 신청서 등 다양한 관련 자료와 지난달 두 차례의 심층 인터뷰, 주변 취재 등을 토대로 ‘내러티브 방식’에 따라 재구성되었습니다. 현재 난민 불인정 이의 신청 절차를 밟으며 한국에서 불안정하게 체류 중인 노라의 요청으로 기사 내 인물의 이름은 익명 처리했습니다.
<히잡에 가려진 난민>
① '여자라는 이유' 조국서 억압... 한국 와 히잡 벗었지만 또 좌절"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311390003479
② 조혼 악습에 떠밀렸던 이집트인 사라, 천신만고 끝 손에 쥔 F2 비자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419030004271
③ 여성, 성정체성, 성적지향... 난민 인정 사유가 될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213160002388
④ 한국 난민보호 수용력 189개국 중 119위... 젠더 가이드라인도 없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31932000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