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숫자만 보는 콘텐츠 시장, 나 하나쯤은 '사람'을 보겠다

입력
2022.06.15 14:00
14면
<4> ‘프로젝트 썸원’ 콘텐트 오너 윤성원

편집자주

<일잼 원정대>는 '현대인의 일'을 탐구하는 콘텐츠 실험실 '커리업(caree-up)'의 인터뷰 브랜드입니다. '일에서의 재미'라는 희소자원을 찾아 정박하지 않고, 원정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일하는 방법'을 수집합니다.


여기 한 ‘개인사업자’가 있습니다. 사업의 밑천은 콘텐츠지만 그걸 ‘빨리, 많이 파는 일’엔 대체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바라는 건 ‘작게라도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 인간의 평균 집중 시간이 ‘8초’로 쪼그라들어버린 시대라지만, 그는 여전히 믿는다고 해요. ‘좋은 텍스트 콘텐츠엔 남다른 저력이 있다’, ‘눈 밝은 독자는 기꺼이 그것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비관과 냉소에 젖은 미디어 업계에서, 낙관의 힘으로 미지를 개척하고 있는 이 콘텐츠 모험가의 이름은 윤성원(37). 한 주 동안 발견한 좋은 콘텐츠를 자신의 관점으로 잘게 씹어 요약해주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썸원(Somewon)의 Summary&Edit’를 연재하고 있어요. 개인 창작자로서는 유례없이 플랫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유료로 운영하는 구독 서비스 ‘썸원 프라임 멤버십’도 만들고 있죠. 유료 콘텐츠에는 성원씨가 직접 쓰는 오리지널 포스팅과 인터뷰, 글로벌 IT 업계 트렌드, 디지털 비즈니스 동향 등이 두루두루 담겨요. 디지털 미디어 업계 경력만 12년차인 성원씨만의 관록 있는 관점이 진하게 배어 있죠. ‘고퀄리티 콘텐츠 맛집’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찐팬’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남들이 잘 안 하는 방식으로만’ 합니다. 기고를 맡긴 창작자들에게 원고료를 두둑이 챙겨주는 것은 기본, 홍대 한복판의 널찍한 공간을 통 크게 임대해 ‘독자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삼았죠. 혹자는 ‘사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의 노선은 유턴 없이 언제나 직진. ‘당장의 수익에 집착하기보단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에 투자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거든요. 모두가 트래픽과 클릭 수만을 보고 내달리는 ‘숫자 주의적’ 시장에서, 나 하나쯤은 ‘숫자 대신 사람’을 봐도 괜찮지 않느냐며 사람 좋게 웃는 모양이 꼭, 고집 있는 백 년 가게 사장님을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실제로 그의 목표는 70대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꾸준한 콘텐츠 잘하는 집’으로 살아남는 거라고 하네요.


Prologue. 10년 동안 거친 회사 4곳, 이력 자체가 '디지털 콘텐츠' 실험

창업 전, 그의 10년 커리어를 훑어보면 이력 자체가 ‘디지털 미디어 실험’의 역사예요. 종편 방송사의 미디어전략실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모바일 미디어 → 유료 구독 미디어 → 독서 모임 커뮤니티 회사를 차례로 거쳤어요. ‘콘텐츠’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다양한 회사를 빠르게, 또 두루두루 경험했죠. 10년 동안 무려 4곳, 한 회사에서 3년 이상을 넘긴 적이 없어요. 왜냐.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이 생길 때마다 ‘이 고민을 나 대신 풀고 있는 회사 어디 없나?’하며 새 길을 찾았거든요. 한 회사에서 ‘모바일 콘텐츠 형식’를 경험했으면, 다음 회사에서는 ‘콘텐츠 유료화’ 시도를 해보는 식으로요. 그렇게 성원씨는 언제나 회사와 ‘같은 미션’을 공유해왔습니다. 회사는 든든한 실험실 역할을 해줬죠.

그는 ‘몸으로 질문하는 사람’이에요. 궁금한 게 생기면, 그냥 냅다 몸으로 부딪쳐봅니다. 창업도 그렇게 했답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는데, 이번엔 자기 대신 이 고민을 풀고 있는 회사가 없는 거예요. ‘없어? 없으면 내가 만들어야지’ 그 고민이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독자가 콘텐츠를 더 잘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는 왜 없을까. 그 과정에 창작자도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독자와 창작자 사이에 피드백과 에너지가 선순환하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면?’


성원씨는 자신을 ‘크리에이터(Creator)’가 아닌 ‘콘텐트 오너(Content Owner)’ 라고 정의해요.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라는 직책에서 앞 단어만 바꿔 만든 말인데요. 원래 프로덕트 오너는 제품의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 출시, 유통, 비즈니스 분석까지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을 뜻해요. 주인의식을 가지고 서비스나 제품의 생애를 리드하는 사람인 셈이죠. 성원씨는 ‘콘텐츠’라는 상품에도 이런 오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창작자의 몫이지만, 콘텐츠가 독자들에게 닿기 위한 길을 부지런히 닦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세상에 없던 일을 발견해, 일종의 ‘창직’을 한 셈이에요. 성원씨가 직접 쓴 자기소개엔 이렇게 적혀 있어요. “양질의 콘텐츠가 꾸준히 생산되고, 좋은 콘텐츠가 더 잘 경험되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데 기여합니다.”

빠르게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작게라도 ‘제대로’ 굴러가는 건강한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프로젝트 썸원’의 콘텐트 오너 윤성원씨의 ‘콘텐츠 창업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Chapter 1. 세 번의 이직, 누군간 ‘망했다’ 하지만, 나에겐 도장 깨기였다

썸원의 독백
난 중학생 때부터 못 말리는 드라마 팬이었어. <나쁜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가을동화>까지, 드라마가 열어주는 다른 차원 세계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이 뛰었어. 장래 희망란은 일편단심 ‘드라마 PD’. PD가 되려면 신문방송학과에 가야 한대서 제일 잘하는 과목이 수학이었는데도 문과에 갔잖아! (웃음) 아무튼 그때의 나는 아무도 못 말렸어. 드라마 보겠다고 야간자율학습도 밥 먹듯이 빠졌거든. 나한텐 드라마 보는 시간이 곧 ‘꿈 공부’였으니까. 스무 살 무렵부터 작법 배우겠다고 드라마 작가들을 따라다니기까지 했거든. 그렇게 외길 인생만을 걸어왔는데… 공중파 PD 공채에서 줄줄이 떨어진 거지. 연달아 고배를 마시면서 어쩌면, 바로 지금이 내 드라마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든 드라마는 주인공한테서 뭘 빼앗고 시작해. 실패, 좌절, 이별, 시련이 오프닝이 조건이지. 그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콘텐츠를 다루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다. 들어가서 일단 일을 배우자 싶었어. 때마침 모두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었거든.

드라마 피디의 꿈이 좌절됐던 그해, 그는 한 종편 방송사의 미디어전략실에 들어가 커리어의 첫발을 떼었습니다. 시청률이 회사의 사업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방송사는 어떤 비즈니스 모델로 돈을 버는지를 배웠죠. 경영진의 손에 들어가는 계약서들이 거쳐가는 곳이니, ‘오버뷰(over-view)’의 관점에서 회사를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은 미디어 산업을 바라보는 '비즈니스적'인 관점을 만들어줬죠. “일은 재밌었지만, 10년 후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디지털 콘텐츠 쪽에 뛰어들어야 겠다.”

그는 전 국민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무렵인 2012년, 모바일 미디어 회사인 ‘피키캐스트’로 이직합니다. “궁금했어요. 앞으로 우린 텔레비전, 신문보다 모바일 앱에서 콘텐츠를 더 많이 보게 될까? 순식간에 그렇게 되더라고요. 한 언론사와 협업해 만든 콘텐츠가 언론사 홈페이지에선 1만 뷰가 나왔는데, 피키캐스트에서는 29만 뷰가 나온 거예요.” 당시 피키캐스트는 불과 1~2년 만에 120만 명이 이용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땅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죠. “유저가 많으니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제 의견은 달랐어요. 광고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콘텐츠의 질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좋은 콘텐츠 자체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번에도 문제의식을 방향키 삼아 새로운 회사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등장한 게 유료 구독을 내세워 등장한 IT 전문매체 ‘아웃스탠딩’이었죠. “이번에 궁금했던 건 ‘사람들이 과연 돈을 내고 볼까?’였어요. 긴가민가하면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죠. 그런데 구독료만 내는 게 아니라 커피 기프티콘까지 얹어주는 구독자들이 있었어요. 잘 봤다면서, 고맙다면서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죠. 이토록 다정하고 적극적인 피드백이라니. “이때부터 독자에 대한 신뢰가 생겼죠. 아!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콘텐츠에 기꺼이 돈을 내는구나. 그게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를 뿐이지.”

문제는 창작자의 성장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는 데 있었죠. 플랫폼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해 나가는데, 창작자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그를 따라가질 못했으니까요. 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생산성과 창의성엔 반드시 총량이 있어서, 소진하고 나면 금방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거든요. 여기서 성원씨의 고민이 또 시작됩니다. 어떻게 하면 창작자가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창작자와 독자가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할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며 양쪽 모두에게 큰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연결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그래서 독서 모임 스타트업 트레바리에 가게 됐고요.” 그렇게 옮긴 네 번째 직장, ‘트레바리’에서는 ‘커뮤니티의 위력’에 대해 알게 됐죠.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좋았는지 경계 없이 떠들고 공감하는 시간들 자체가 재미일 수 있구나’를 피부로 경험했습니다. 독자들끼리 모아놓는 것만으로도 콘텐츠의 소비 경험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요.


10년 동안 그는 네 번을 점프했어요.

종편 방송사에서 모바일 미디어로, 유료 구독 미디어에서 커뮤니티 스타트업으로, 그리고 마침내 창업으로. 각각의 회사에서 차곡차곡 쌓은 것들이 ‘창업’의 밑그림이 됐죠. 방송사에서 계약서를 검토했던 경험부터 모바일 콘텐츠, 유료 구독 서비스, 커뮤니티를 만들어본 경험 모두가 ‘프로젝트 썸원’의 밑그림이 된 셈입니다.

이직을 세 번이나 한 그를 두고 혹자는 ‘망친 커리어 패스’라며 쓴소리를 퍼붓기도 합니다. 한 회사에서 꾸준히 우상향으로 뻗어나가는 경력을 곧 성공으로 여기던 관점에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성원씨의 관점은 달랐다고 해요.

그는 회사를 ‘돈을 받으며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봤습니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생길 때마다, 제 니즈와 맞아떨어지는 회사들이 때마침 좋은 타이밍으로 나타났어요. 회사를 다니며 많이 배웠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궁금한 건 계속 새롭게 생기니까.” 말하자면, 그때그때 내 필요에 맞는 회사를 찾아 성장의 도약대로 삼은 셈이죠. 마치 ‘도장 깨기’ 하듯 말입니다.


Chapter 2. 남들 다 하는 거, 일단 저는 안 해보겠습니다

성원의 독백
디지털 콘텐츠 업계에 있다 보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뉴스레터는 바이럴(공유)이 안 돼서 오래 못 간다, OTT가 넘쳐나는 시대에 누가 텍스트 콘텐츠에 돈을 주고 보냐. 안 된다, 가망 없다, 소용없다, 못 한다는 말들뿐. 그래, 안 된다는 이유는 다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는 사람이 없는 거야. 진짜 안 되나? 해봐야 아는 거 아닌가? 망하더라도, 나는 해볼만 한 가치가 있는 것 같은데.

콘텐츠로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레퍼런스가 뭡니까? 모델로 삼은 서비스가 있어요?” ‘없다’고 대답하면 표정들이 떨떠름했습니다. 성공한 전례를 참고하지 않고 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다들 불안한 시선을 보냈죠. 레퍼런스 없음, 내가 하는 것이 곧 전례 없는 100%의 원본이라면, ‘없던 방식’으로 가보자는 게 그의 원칙이었죠.


첫째, ‘콘텐츠 주도 성장(Contents Driven-growth)’ 모델을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케팅에 돈을 쓰지 않고 자금이 생기는 족족 콘텐츠에 투자하기로 한 거죠. 가장 먼저, 유료 구독 서비스에 기사·인터뷰·번역본을 기고하는 창작자들에게 원고료를 넉넉히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연재노동자들은 마트에서 g(그램)수를 달아 고기를 팔 듯,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매수’당 원고료를 받거든요. 반면 성원씨는 자신이 받아봤던 원고료 중 가장 높은 금액을 고료로 정했어요. 길이에 상관없이요. 구독자가 늘어 수입이 늘어나면 원고료 역시 그에 연동해 올려주기로 했습니다.

“과연 10만~20만 원 정도의 원고료로 좋은 콘텐츠가 나올까요? 그런 돈을 받고 자신의 역작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한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을까요? 저는 창작자가 스스로 원하는 걸 좀 더 깊게 탐구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야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다고 봤어요. 글 쓰는 사람들에게 그런 조건을 제공해주는 곳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한번 작게라도 실험해보자’ 싶었죠.”

심지어 그는 마감조차 따로 주지 않는다고 해요. ‘본인이 진심이라면 알아서 쓸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죠. 영감이 된 건 미국의 비영리 인터넷 언론인 ‘프로퍼블리카’였어요. 이 회사는 기자 1명이 2~3년 동안 딱 한두 건 기사만 제대로 취재할 수 있도록 ‘취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네요. “제 실험이 성공하면 언젠가 묻고 싶어요. 혼자 운영하는 조그만 회사도 이 정도를 줄 수 있는데, 더 잘나가는 회사들은 왜 형편 없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둘째, 철저한 ‘독자 우선주의’를 추구한다고 해요.

그의 유료 멤버십 회원은 연간 멤버가 약 100여 명, 월간 멤버가 200~300명 사이를 오가는데요. 성원씨는 가급적 회원들을 ‘직접’ 만난다고 합니다. 연간 회원들은 멤버십 혜택에 ‘윤성원과의 미팅’이 포함돼 있거든요. 소소한 근황부터, 요즘 하는 일, 관심사, 새롭게 좋아하게 된 것들에 대해 두서 없이 이야기를 나눠요. 그렇게 얼굴 맞대고 마주 앉아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독자들을 만나다 보면 놀라요. 그들이 훨씬 똑똑하거든요. 대부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요.” 관중석에 누가 앉아 있는지가 보이면, 절로 정신이 들고 긴장이 되죠. 더 또렷하게, 더 정확하게, 더 제대로 된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겸허한 책임이 생깁니다. 독자가 ‘상상 속의 흐릿함’이 아니라 ‘선명한 실체’로 다가올 때, 창작자에겐 전에 없던 생생한 동기가 생겨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랑 비슷한 설렘도 생기고요. “요즘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유명 아이돌조차 매번 자기 사진 찍어주러 오는 팬들을 알아봐주고 고마워하거든요. 저는 창작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방역 수칙이 완화된 요즘은 멤버십 회원들끼리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오피스 아워’와 ‘아무 말 모임’을 열기도 합니다. 정해진 주제 없이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아무 주제’로 ‘아무 말’이나 나누는 모임이에요. 창작자와 독자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 독자와 독자 역시 연결될 수 있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꾸려 나가기 위한 초석이죠.

확실히 서로의 존재는 아는 만큼 소중해진답니다. 그래서 성원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1순위는 ‘독자’예요. 우선순위의 원칙은 언제나 ‘멤버십 회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한다’죠. 광고나 강연 제안을 수도 없이 많이 받지만, 높은 보수를 약속해도 대부분 거절한다고 해요. “외부 요청을 받기 시작하면, 제 콘텐츠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니까요.”


Chapter3. 사업이 잘되고 있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원의 독백
솔직히 말하면 사업이 기름칠한 듯 잘 굴러가고 있지는 않아. 버는 족족 원고료며 사무실 유지비에 나가니까. 작년엔 1년 열 두 달 중 6승 6패를 했어. 손익분기를 넘겼던 게 반, 넘기지 못해 적자를 봤던 게 또 반이야. 적자가 연속으로 3개월을 넘기면 ‘뭐가 문제일까’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어. 300명이 꾸준하게 이용하는 유료 멤버십 모델을 찾겠다고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데, 계속 실패 중이야. 단 1g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 하지만, 300명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그 덕에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니까. 그러면서 예상치 못하게 배우는 것도 많고. 가끔,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았는지를 새삼 깨달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놀라워.

오는 9월이면, 유료 멤버십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만 2년이 된다고 해요. 아직도 너무나 많은 가설이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기 위해 임대한 홍대 한복판의 사무실은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며 1년 반 내내 비어있었어요. (방역 수칙이 완화된 요즘에 와서야 조금씩 쓸모를 찾아가고 있죠.) 기고를 부탁한 외부 창작자들이 4명으로 늘면서 원고료 지출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적자’를 면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건강한 구조’를 만드는 실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거든요.

성원씨가 만들고 싶은 생태계는 ‘독자와 창작자가 공진화할 수 있는 콘텐츠 기반 네트워크’라고 해요. '공진화'란 한 생물이 진화하면 그와 상호 연관된 다른 생물 역시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뜻하는 개념인데요. 커뮤니티를 통해 창작자와 독자가 만날 수 있다면, 양쪽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봤어요. '발신자 대 수신자' 관계를 넘어서는 거죠.

“방법은 모르지만, 일단은 단순하게 시도하고 있어요. 콘텐츠에 투자하면 멤버십 회원들이 늘 거고, 그렇게 수입이 많아지면 저는 또 그걸 콘텐츠에 투자해요. 회원들이 늘면 피드백이 다양해지니 창작자에게도 좋고, 사람이 모일수록 커뮤니티 구성원이 풍부해질 테니 독자에게도 좋죠. 넷플릭스는 구독자가 늘어도, 시청자에게 돌아오는 몫이 없잖아요? 저는 구독자가 늘수록, 독자에게도 창작자에게도 득이 되는 생태를 만들고 싶어요.”


그는 습관처럼 ‘도도하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콧대 높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뜻이 있는 한편, ‘막힘 없이 기운차다’는 뜻도 있죠. 새침한 여성에게 붙이는 이 형용사를 성원씨는 ‘사업하는 자세’를 일컬을 때 자주 씁니다.

혼자 사업하면 도도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중심을 지키고 단단하게 자립하는 게 힘들죠. 주변에서 보태는 말들이 많으니까 흔들리기도 쉽고요. 저도 처음엔 사람들 웃기려고 쓴 표현인데, 쓰다 보니 재밌기만 한 게 아니라 꽤 괜찮은 의미인 거예요. 내가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도도해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멤버십 네트워크도 도도했으면 좋겠다.”

‘도도하다’는 표현을 곱씹다 보니 '뚝심'이나 '줏대' 같은 말들이 덩달아 떠오르더군요. 냉소의 물살을 거슬러 낙관을 밀어붙이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것들이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고집. ‘도도하다’라는 말에 그 '고집'이 깃들어 있는 거 같았어요. 성원씨는 그 도도한 고집으로, 좀 다른 생태계의 가능성을 엿보는 중이라고 하네요.

◆ 윤성원씨가 실험 중인 ‘공진화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②편 기사 ‘일잼포인트’에 더 자세히 실립니다.


Epilogue. '콘텐츠를 향한 진심', 물음표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90년대 중반, 드라마 '모래시계'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직장인들이며 학생들이며 이 드라마 보겠다고 일제히 집에 일찍 들어갔잖아요. 오죽하면 길거리에 사람 한 명이 없을 정도로요. 저는 콘텐츠의 그런 힘이 너무 좋아요. 뭔갈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힘, 삶을 충만하게 하는 힘이요.”

드라마 보려고 야간자율학습을 ‘째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20년간 한결 같은 ‘콘텐츠 덕후’입니다. 최근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열광하며 봤다고 해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오랜 열혈 팬이기도 하고요.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경쟁을 펼치며 너도나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투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요즘, 그는 이런 생각을 했대요.

“상품은 경쟁시키면 가격도 질도 좋아지잖아요? 콘텐츠는 달라요. 창작자를 경쟁시키면 다 비슷해져요. 비슷하게 나빠지죠. 아무리 노력해 좋은 걸 내놓아도, 힘들이지 않고 쉽게 만든 것에 묻히니까. 결국엔 클릭 수가 높게 나오는 것들만 만들게 되죠. 그래서 콘텐츠는 경쟁시키는 게 아니라, 아낌 없이 지원하고 투자해야 해요. 그래야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하고 멋진 게 나오죠. 저는 그런 투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단 하나’의 진심(眞心),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아마 성원씨의 진심은 ‘콘텐츠를 대하는 마음’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일의 재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나답게 하는 거요. 남들 하는 거 그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끊임 없이 고민하는 거, 그게 나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시도해볼 만하다고 여기는 걸 자꾸 해요. 그냥 저질러보면서 알게 되는 게 많더라고요. 그게 재밌고요.”

시작은, 콘텐츠를 향한 ‘무한대의 사랑’에서 갈라져 나온 궁금증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 이 물음표를 따라 12년을 걸어왔죠. 성원씨는 이 길의 끝에 도착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대요. 걷다 보면 또 새로운 물음표가 생길 거니까. 어쩌면 ‘도착’이란 개념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무한히 ‘수렴해가는’ 과정이겠지요.

“제가 35살에 창업을 했는데, 사업자를 내며 다짐한 게 있어요. 만 70세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자! 지금 바라는 건 그거 하나인 거 같아요. 크게 망하지 않고, 작게 실패하며 자꾸 시도하고 싶어요.”


▶ 콘텐츠 오너 윤성원의 '일잼포인트' 읽으러 가기 (관련기사②)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312320001547

▶ ‘커리업’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레터에만 담기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Letter/careeup



박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