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파상 공세에 맞서 100일 넘게 버티고 있지만, 최근 들어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잃은 영토를 되찾는 것이지만,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접경 지대인 동북부 루한스크 지역 전역을 몇 주 안에 러시아가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당국자는 "세베로도네츠크는 일주일 내에 함락될 수도 있다"고 했다. 동부 전선 최대 격전지인 세베로도네츠크가 넘어가면 루한스크가 러시아 수중에 들어가는 셈이 된다. 올렉산드르 스트리우크 세베로도네츠크 시장은 BBC방송에 "우크라이나군은 도시의 3분의 1만을 장악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잘 버티고 있다는 서방 언론의 초기 보도와 달리, 우크라이나군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 대통령실 고문은 WP에 “우크라군 약 1만 명이 숨졌다”며 “하루 200~300명이 전사하고 있다”고 했다. 전사자는 우크라이나 현역병 20만 명(글로벌파이어파워 추산)의 5% 수준이다.
문제는 병력 손실만이 아니다. 탄약과 포탄도 떨어져가고 있다. 바딤 스키비츠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 부국장은 10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탄약이 거의 동나고 있다. 포격전이 한창이지만 우리는 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비탈리 김 미콜라이우 주지사 역시 탄약의 조속한 공급을 촉구했다. 미콜라이우주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꼽히는 요충지인데도 적절한 보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외부의 전황 평가도 냉정해졌다. 스튜어트 램지 영국 스카이뉴스 기자는 “최근 돈바스 지역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며 “러시아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11일자 전황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이 점점 더 우크라이나군에 피해를 주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은 특히 포병 체계와 관련된 지속적인 서방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러시아는 남부 요충지 헤르손 점령에 쐐기를 박으려 하고 있다.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헤르손주 군민 합동정부는 11일 주민 23명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했다. 러시아가 임명한 블라디미르 살도 헤르손 지방정부 수장은 “모든 헤르손 주민은 러시아 여권과 시민권을 가능한 한 빨리 얻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여기엔 향후 ‘러시아로의 합병 투표’에 대비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와 미국 사이에서 파열음까지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 기자들과 만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미국의 경고를 무시해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결국 침공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 주변) 많은 사람들은 경고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세계 주요국들이 막지 못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100일 넘게 저항하는 나라를 비판하는 것은 몰지각한 일”이라고 반발했다. 바이든의 발언을 두고 "실언"이라는 해석과 "미국이 전쟁 승리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