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이 친구들 결혼 소식 들리면 더 그리워" 마르지 않는 눈물

입력
2022.06.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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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사망' 효순·미선 20주기>
미선이 부친 "죽어야 잊혀질까" 먹먹 
"딸 죽음, 미국 공격에 이용 안 되길"
동네 주민도 한해 거르지 않고 추모
동창들 "환하게 웃던 얼굴 보고 싶어"
평화공원에도 시민들 추모 글 '빼곡'

“그날 그 사고만 없었다면, 지금쯤 결혼해 화목한 가정을 꾸렸을 텐데…”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효순·미선이 부모의 가슴은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 9일 경기 양주시 광적면 집에서 만난 미선이의 아버지 심수보(68)씨는 밭일을 잠시 쉬고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효순·미선이 사망 20주기를 앞두고 “벌써 20년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는다. 죽으면 잊혀질까. 지금도 딸 얼굴이 꿈에 보인다”며 먹먹한 심경을 전했다. 심씨의 집은 사고 현장에서 불과 900여m 거리에 있었다.

심씨는 딸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다 “딸의 친구들이 장성해 결혼하는 걸 보면 더 보고 싶고 그립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국민 성금으로 추모 공간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선 "딸 아이를 기억해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 마련된 '효순미선 평화공원'(367㎡)은 2020년 준공됐다.

심씨는 당부의 말도 꺼냈다. 그는 “딸 아이가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졌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을 공격하는데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달 13일은 중학생,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난 효순·미선이 20주기다. 20년 세월에 이제는 잊힐 법도 하지만, 두 여중생을 기억하며 아파하는 이들은 가족만이 아니었다.

이날 효순·미선 평화공원 추모 공간엔 60대 중년 남성이 꽃다발을 놓고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머물렀다. 2002년 6월 13일 사고 당일 치러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양주시의원 재선에 성공했던 이종호(65) 전 의장이었다.

그는 효순·미선이를 어렸을 때부터 곁에서 봐온 동네 아저씨였다. 동네 선배인 심수보씨와 효순이 아버지 신현수(68)씨와도 가깝게 지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2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맘때면 추모 꽃다발을 놓고 "평온하게 쉬라"며 빌어왔다.

이씨는 “재선에 당선된 기쁨도 잠시, 아이들의 비보 소식을 접한 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며 “동네 어른으로, 시의원으로 인도도 없는 도로를 놔둬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효순·미선이는 사고 당일 인도가 없는 왕복 2차선 지방도로를 따라 걷다가 뒤따라 오던 미군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 두 소녀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이듬해 이 도로엔 폭 1m가량의 인도가 놓였다.

이씨는 “20년이 지났는데도 이 도로를 다닐 때면 가슴이 먹먹하다”며 “다시는 기반시설이 열악해 아이들이 숨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친구들도 두 소녀의 빈자리를 그리워했다. 효순·미선양과 같은 학교 동창이었던 이재규(33·중학교 교사)씨는 “사고 전날 효순이랑 미선이가 친구 생일 파티를 위해 의정부 집에 놀러간다고 하기에, 나도 끼워 달라며 장난치며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환하게 웃던 두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효순·미선이를 추모하는 평화공원에도 두 소녀를 그리워하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한 시민은 “열다섯 꿈 많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두 영혼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못다 핀 꿈을 활짝 펴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추모공원 반대편 벽면엔 효순·미선이 사고 이후 일어난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사진과 함께 바깥 세상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두 소녀의 얼굴 사진이 드러나 있었다.

13일 이곳 평화공원에선 20여 개 시민단체가 모여 효순·미선이 20주기 추모제를 진행한다.

이종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