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전국~" 마지막 외침에 '눈물'...강호동 유재석이 운구

입력
2022.06.1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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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송해 영결식 엄수
송해 다큐 육성 흐르자 유족 등 눈물
종로구 '송해길' 거쳐 KBS 본관서 노제
'빨간 뚜껑' 소주 '전국노래자랑' 음악이 마지막 배웅

10일 오전 4시 30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국민 MC' 송해의 영결식에선 다큐멘터리 '송해 1927'에서 발췌한 고인의 생전 육성이 흘러나왔다. "(내) 고향은 황해도 재령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태어난 건 1927년 4월27일생입니다". 정겨운 실로폰 소리와 함께 마침 "전국~"이란 송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조문객들은 "노래자랑"이라고 답했다. 영면에 든 송해가 남기고 간 마지막 외침이었다. 유족은 눈물을 훔쳤고 강호동은 천장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붉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노년을 청춘으로 만든 마술사"

송해의 영결실이 이날 엄수됐다. 강호동 유재석 등 장례위원단 위원을 비롯해 임하룡, 이상벽, 전유성 등 후배 100여 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엄영수 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전국노래자랑'으로 1,000만 명이 넘는 시민과 함께 한 송해의 넋을 기렸다. 엄 회장은 "선생님은 '전국노래자랑'에서 출연자와 그냥 대화만 하신 게 아니다. 선생님이 거친 그곳은 재래시장이 되고 무배추밭이 되고 화개장터가 됐다"며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고 흥겹게 노는 자리를 깔아주신 선생님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청춘으로 만든 마술사였다"고 말했다.


"선생님 그리울 때 국밥집 들러 기억할 것"

이용식은 "선생님 저 용식입니다"라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목이 멘 이용식은 "이곳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많은 사람과 힘차게 외쳤지만 이제 수많은 별 앞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외쳐달라"며 "선생님 그리울 때는 낙원상가 국밥집에 들러서 기억하겠다"고 했다.

송해는 트로트 가수들의 '아버지'라 불렸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은 "선생님은 70년 동안 모든 사람에게 스승이었고, 아버지였고, 형, 오빠였다"며 "수많은 가수를 스타로 탄생시켜주는 역할을 해주셨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에선 설운도, 현숙, 문희옥, 이자연, 김혜연, 신유, 배일호가 고인의 노래인 '나팔꽃 인생'을 불렀다.강호동과 유재석은 고인의 관을 직접 운구했다. 손자는 송해의 영정을 들고 고인에게 수훈된 금관문화훈장(1급)이 고인의 뒤를 따랐다.

빈소를 떠난 운구차는 오전 5시 40분께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에 도착했다. 황해도 출신 실향민 송해의 '제2의 고향'이다. 이 곳엔 개인 사무실과 그가 생전 자주 이용했던 국밥집과 이발소, 사우나 등이 있다. 운구차가 들어서자 주변 상인, 주민 등 30여명이 마중했다. 종로3가역 송해 동상 옆 벤치엔 고인의 생전에 즐겨 마시던 도수 높은 '빨간 뚜껑' 소주도 놓여 있었다.


KBS서 울려퍼진 '전국노래자랑' 시그널 음악

송해길을 거쳐 운구차는 여의도 KBS로 향했다. 본관 앞에선 익숙한 '전국노래자랑' 시그널송 연주가 울려 퍼졌다.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을 수년 동안 함께 한 신재동 악단이 연주를 했고 김의철 KBS 사장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김 KBS 사장은 "송해 선생님, 들리십니까. 대한민국 전국 공원에서, 널따란 운동장에서 '전국노래자랑'의 딩동댕 소리가 울렸다"라며 "선생님의 작은 거인 같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고 국민들과 웃던 그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부디 세상의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편히 영면하소서"라고 말했다. 고인의 유해는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에 안장된 부인 석옥이씨 곁에 안치된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