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퇴역 경주마 '골드럭'(4세)입니다. 2020년 경주마로 뛰기 시작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고, 올해 4월 도축될 예정이었습니다. 14번의 경주를 하는 동안 몸은 망가졌고 식용금지 약물을 27차례나 투여받아 고기로 판매될 수도 없었습니다. 사정을 알게 된 제주 한 농장주가 저를 구조해 지금은 제주 안덕면 동광리 인근 목장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퇴역 경주마 모두에게 저 같은 행운이 따르는 건 아닙니다. 올해 초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고꾸라진 뒤 나흘 만에 사망한 퇴역 경주마 '마리아주'(예명 까미)를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당시 동물학대 논란으로 번지며 퇴역 경주마의 복지를 보장하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퇴역 경주마는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한 해 퇴역하는 경주마는 1,000마리가 넘지만 은퇴 뒤 이력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습니다. 말산업 정보포털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주마 퇴역 건수는 1,550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971마리가 '용도미정', 99마리는 '기타'입니다.
경주마가 퇴역하면 관상용 번식용 승용 교육용 등으로 신고해야 하지만 마주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습니다. 부상을 입은 경주마는 은퇴 후 2~3일 만에 도축되거나 유원지 승마장, 꽃마차 또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에 이용되면서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지요.
최근 퇴역 경주마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5일 경주마, 싸움소 등 사행산업에 이용됐다 퇴역한 동물의 복지 계획을 정부가 세우자는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겁니다.
또 동물학대 금지 행위에 대중문화예술제작물 제작 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추가했습니다. 박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를 "퇴역동물 관리 및 복지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명시하고, 영상물 등 제작 시 동물학대 예방 규정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법은 태종 이방원 촬영에 동원됐던 퇴역 경주마 마리아주(예명 까미)의 이름을 따 '까미법'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가장 중요한 건 말 이력관리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경주마에 한해서만 의무화하고 나머지 말들은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퇴역 경주마를 비롯,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말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소유권 이전, 용도변경, 사망현황 등 정확한 이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말 이력관리제 의무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조속히 추진되길 바랍니다.
말 이력관리제 의무화, 말 복지프로그램 구축 등에 앞서 현재 말 산업 복지실태 조사도 이뤄져야 합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실태를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해야만 제대로 된 법제화, 복지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경주마 사육두수를 조절할 필요도 있습니다. 2019년 제주도 내 경주마 실태 폭로에 참여했던 필립 샤인 페타 정책부서 수석 연구이사는 "한국에서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번식시키고 있다"며 "이는 무분별한 번식과 도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은퇴 후 방치되는 퇴역 경주마를 위해 '까미법'을 통과시켜주세요. 그리고 말 이력관리제 의무화, 말 복지프로그램 구축 등을 통해 퇴역 경주마의 삶을 보장해주시길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