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연동제’와 ‘나쁜 시장경제’

입력
2022.06.08 18:00
34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와 ‘시장경제’의 회복을 선언하자, 정부의 시장 개입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걱정스러운 행태가 부쩍 눈에 띈다. 새 정부로서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이념 과잉과 지나친 정부 개입으로 경제시스템에 심각한 무리를 초래했으니, 그 ‘과잉’과 ‘지나침’을 ‘상식’ 수준에서 보정하겠다는 얘기일 텐데, ‘나쁜 시장경제’의 보정을 위한 최소한의 정부 개입까지 반대하는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납품단가연동제’ 논란만 해도 그렇다.

▦ 납품단가연동제는 하도급 계약기간 중 원ㆍ부자재 가격이 변동될 경우, 변동을 반영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는 제도다. 2008년 도입이 추진됐으나 시장원리 훼손, 대기업의 해외부품업체 선호 등의 이유로 법제화 대신 ‘납품단가 조정협의’만 의무화됐다. 하지만 최근 국제 원자잿값이 급등하면서 대기업 하청 중소기업이 가격 급등 부담을 떠안는 상황이 빈발하자 중소기업중앙회가 연동제 법제화를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 대개 하청계약은 일감을 주는 원사업자(대기업)가 세칭 ‘갑’이고, 수급사업자(중소기업)가 ‘을’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통상 중소기업 이익률은 박하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추가로 원자재 가격상승 부담까지 떠안게 되면 그야말로 일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지경에 몰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소기업계의 연동제 법제화 요구는 ‘죽지 않을 안전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절박한 호소인 셈이다.

▦ 하지만 연동제 요구에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즉각 연동제가 되레 하청 중소기업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고, 그걸 납품가격에 반영하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대기업의 수요는 1.45% 감소하고, 대신 해외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1.21% 증가한다는 분석자료까지 덧붙였다. 유감인 건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가 더는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도 편한 관행에 기대 상황 개선을 회피하려는 구태가 되풀이되는 현실이다. 건강한 시장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나쁜 시장경제’를 개선하는 진지한 노력이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