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의 전세 추월, 원인 분석과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

입력
2022.06.07 06:30
15면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38> 월세시대, 세심한 정책으로 서민 주거 안정시켜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4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월세거래량이 전세거래량을 추월했다. 전월세신고제 영향으로 추가적으로 신고되는 월세가 늘었다손 치더라도 월세 비중이 전세보다 많아진 것은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에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예견한 대로 전세는 종말의 수순을 밟는 것일까. 아니면 전세가격 급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반전세 계약이 늘어나서 일시적으로 월세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서민 주거 안정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사안인 만큼 월세 확대의 양상과 원인에 대해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세가 대세가 된다면 임대차시장의 변화는 불가피하고 정부의 정책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거 사다리에서 월세의 역할

주택시장에서는 각 가구가 더 안정적인 점유 형태로 옮겨가는 과정을 주거 사다리(Housing Ladder)라고 부른다. 통상적으로 '월세(사글세)→보증부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목돈 없이 시작하는 청년들은 대체로 보증금이 없는 사글세나 월세에서 출발한다. 그러다가 종잣돈이 좀 모이면 보증금이 있는 월세로 옮기고, 더 큰 목돈을 만들면 전셋집으로 옮기게 된다. 이 과정이 잘 진행되면 전세금에 저축한 돈과 대출을 합쳐서 내 집을 마련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월세는 보증금의 크기와 지불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며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지금은 흔하지 않지만 일정 기간의 월세를 미리 내고 사는 사글세는 주거 사다리 중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한다. 1950년대까지는 초하루 삭(朔)자를 써서 '삭월세(朔月貰)'로 불렀는데, 매달 초에 선불로 월세를 내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1년 계약을 하는 경우에는 1년치 월세를 미리 지급하고 거주하는 기간에 따라 집주인이 제한다고 해서 '깔세'라고도 불렀다. 미리 지불한 월세가 보증금 역할을 하는 순수월세 형태 중 하나다. 사글세는 거의 사라졌다가 보증금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임대인들이 많은 대학가나 고시촌을 중심으로 최근 다시 나타나고 있다.

보증부 월세는 주거 사다리 중 사글세 바로 다음 단계에 해당한다. 부에서는 2015년부터 보증부 월세를 순수월세, 준월세, 준전세 등 3개로 세분화해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순수월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12배 이하인 경우를 말하고, 준월세는 12~240배, 준전세는 240배를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비공식적으로는 '반전세'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되는데, 대체로 준전세나 준월세 중에서 보증금 규모가 매우 큰 경우를 지칭한다. 반전세 계약은 대부분 전세 재계약 시점에 추가적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므로 보증금 규모가 해당 주택 전세금의 70~80% 정도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위와 같이 월세는 전세에 가까운 준전세부터 보증금이 없는 사글세까지 매우 스펙트럼이 넓으므로 '월세 확대 현상'은 조금 더 세분화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전세의 월세 전환이 준전세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이것은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전세시장이 하향 안정화하면 다시 전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모든 월세 유형이 확대되고 있다면 월세 전환은 중장기적인 변화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1년간의 변화를 보면 월세 전환이 주로 반전세 중심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순수월세 비중도 늘었으므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월세 전환의 요인들

정부에서는 전월세신고제 시행으로 인해 그동안 집계되지 않았던 월세가 추가적으로 통계에 잡혀서 월세거래량이 전세를 추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지난해 신고제가 시작된 6월부터 뚜렷한 거래량 증가가 나타났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올해 들어 훨씬 뚜렷한 증가세가 보인다. 좀 더 상세한 데이터를 분석해 봐야겠지만 전월세신고제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월세의 전세 추월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만약 실질적으로 전세가 월세로 많이 전환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전세가 상승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임차인들의 전략이다.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약 시에 임대인의 보증금 상향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임차인의 보증금 미회수 위험은 커진다. 주택시장이 하향 안정세로 돌아서서 매매가가 전세가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 계약이 종료되었을 때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보증금을 낮추고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 전세대출보다 월세가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시중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있으므로 지역에 따라 월세가 대출이자보다 낮은 경우가 있어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려줘야 하는 임차인은 월세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구나 전세금을 변동금리로 대출해야 하는 경우 앞으로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위험이 있는데, 월세 전환은 2년 동안은 고정된 월세를 지불하면 되므로 훨씬 안정적이다. 물론 대출 여력이 없는 가구를 중심으로는 불가피하게 준전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보인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월세의 매력이 상승하고 있다.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주택 관련 보유세가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매달 들어오는 월세는 귀중한 납세 재원이 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예금금리가 올라가긴 했으나 대부분 2%대로 전월세 전환율(5%내외)에 비하면 아직 낮은 상태다. 이와 같이 임대인도 전세의 월세 전환을 통해 보유세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므로 당연히 월세전환을 반기게 된다.

월세시대, 임대차시장 확대 기회로 삼아야

월세가 확대되면 전세를 이용한 갭투자나 전세사기와 같은 부정적 현상들이 감소할 것이다. 최근 신축빌라를 매매가와 같은 수준에 전세를 놓고 전세 계약 당일 변제 능력이 없는 바지주인으로 명의를 변경하고 빠져나가는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만약 이러한 빌라에 대해 보증부월세가 일반화한다면 매매가와 보증금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으므로 전세사기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수천만 원 이상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세가 증가한다면 업형 임대사업자의 수익성을 개선시켜 임대주택공급 확대에 기여할 수도 있다. 통상 주택사업자가 장기임대를 하지 않고 분양을 하는 것은 전세 중심의 임대차시장에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월세 계약이 일반화한다면 정기적으로 현금 수입이 생기므로 건설 후 분양하지 않고 임대주택으로 운영할 수 있는 주택이 증가할 것이다. 월세 중심의 해외 주택시장에서는 민간 기업의 임대사업이 활성화돼 있다.

그런데 월세 전환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전세보다 월세의 주거비가 높으므로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예산의 제약이나 임대인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월세 계약을 하는 경우에는 더 부정적이다. 전세금을 지불할 만큼 충분한 목돈을 가지고 있어도 매월 월세를 내야 한다면 임차인은 애써 마련한 목돈을 헐어야 한다. 이는 자가 마련 가능성을 낮추므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월세 확대 추세에 맞춰 정부는 전세 중심의 주택 정책에서 벗어나 월세시장 안정에 더 큰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은 전세시장이 임대차시장을 주도했으므로 저리의 전세대출과 전세시장 안정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전세에 비해 월세로 사는 임차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저소득층임을 감안할 때, 다가오는 월세시대에 대비한 정책들이 필요하다. 월세주택의 공급 증가를 촉진하고, 월세 보조나 월세액 공제를 확대하는 등 월세 부담 경감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