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서구 영화를 보고,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고 싶다. 저가 비행기로 유럽 여행을 하고 싶다. 나는 ‘왕따’가 아닌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다.”
러시아인 언어교사 마리나(57)의 말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장기화에 지친 러시아의 중산층이 이런 일상회복을 갈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로 문화생활, 쇼핑, 여행 등 러시아인에게 각종 생활의 제약이 일상화됐다. 제재에 따른 물자부족으로 물가가 상승하면서 이들의 호주머니는 가벼워지고, 삶은 팍팍해졌다. 이 때문에 일상의 즐거움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심리가 러시아 중산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독립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 센터(Levada-Center)가 4월 러시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군사작전(전쟁)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30%는 조건부로 지지한다고 답했고, 19%는 아예 반대했다. 응답자 절반가량만 전쟁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인 절반 정도는 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끝나길 바란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전쟁 종식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바람은 전쟁 진행 상황과 관련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장에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리 유딘 모스크바 사회경제과학대학 교수는 “자신이 유럽인이라 생각하는 (러시아의) 엘리트 일부는 푸틴 대통령의 말대로 전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 의구심을 품고 있다”며 “뉴스 시청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쟁은 신나치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키는 것이란 푸틴 대통령의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 역시 전쟁이 오래 이어지면서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은 이길 때까지 전쟁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러시아인들은 예상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하지만 이를 막을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날로 요원해지는 일상회복 가능성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며, 우크라이나가 굴복해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는 분석이다. 정치분석가인 표도르 크라세니니코프는 “러시아인들은 푸틴 대통령이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군사력에 곧 굴복하기만을 바라며, 좌절감과 우울함을 느낀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