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랫말이 있다. 님과 남 사이를 살핀 참 기막힌 비유가 아닌가? 한국말에는 이런 말맛이 있다. '님'과 '남' 사이에는 점이 하나 더 보이지만, '맛'과 '멋'은 모음 하나가 다르다. 'ㅏ'와 'ㅓ' 하나로 음식의 맛과 사람의 멋을 구별한다. 이런 말은 또 있다. '낡다'와 '늙다', '남다'와 '넘다', '마리'와 '머리' 등이 기가 막히지만 그러한 관계이다. 우리는 지금도 동물의 머리로 마리 수를 세며, '소 15두'처럼 말하기도 한다. 가방은 낡고 사람은 늙지만, 맞바뀌지도 않으면서 비슷한 느낌으로 끌고 가는 그 말들의 관계도 묘하다.
'맑다'와 '밝다', '마당'과 '바탕'처럼 물증은 없으나 그 관계에 심증이 가는 말도 있다. 물을 많이 타서 묽게 하는 것이 맑게 하는 행위의 일종이라면 맑은 것과 묽은 것 사이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은 촘촘한 그물망의 옆과 그 옆자리처럼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긴 칼 모양인 생선이 있다. 그런데 칼치라 하지 않고 갈치라 하는 까닭이 뭘까? 바로 칼의 옛말이 '갈'이었기 때문이다. 사극을 통해 널리 알려진 '고뿔'은 감기의 옛말이다. 코에 불이 난 듯 콧물이 줄줄 흐르고 줄재채기가 나는데, 왜 코불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코의 옛말이 '고'였기 때문이다. '머리'와 '가락'이 합쳐졌는데 '머리카락'이 되고, '살'과 '고기'가 함께 쓰이면 '살코기'가 되는 등 뒷말의 첫소리가 거센소리로 된 것은 '머리, 살' 등이 옛말에서 'ㅎ'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갈래에서 살아온 말은 '암탉, 수탉, 안팎' 등 아주 많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말의 사연도 만만찮다.
한때 전국의 기차역, 버스터미널에서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대합실'은 이제 '맞이방'으로 바뀌었다. '맞다', '마중' 등 우리말이 있으니, 굳이 연원 모를 대합실이 '맞이방'을 대신할 이유가 없었다. '지붕, 마감, 무덤'은 각각 '집, 막다, 묻다'와 얽혀 있고, '놀다'는 '놀이, 노래, 노름'을 만들어냈다. 우리에게 '삶'을 준 '살다'는 우리를 한국 '사람'이라고 부르게 한다. 한국 사람의 삶은 한국말에 담긴다. 사연 없이 훅 치고 들어와 잘 만든 그물의 어딘가를 끊어놓는 말을 쉽게 담아도 될까? 오랜 시간 한국 사람의 사연을 담아낸 한국말을 한 번 더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