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의 인플레이션

입력
2022.06.04 00:00
22면

중년의 취미로 여겨졌던 골프가 젊어졌다. 2030 많은 또래 친구들이 골프에 눈을 떴다. 한 지인도 골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뜻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의 소득과 집안 형편을 알기에 라운딩 한 번에 수십만 원을 써야 하는 운동을 취미로 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정도로 재밌냐고 물었다. 그는 재밌긴 한데, 남들도 이 정도는 다 하니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대화에 끼기도 어려워서 시작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돈 모아서 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골프장 이용료에, 끝나고 어울리는 비용에, 레슨비에 부담이 상당할 것 같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한 달 연습하고 골프장에 나가 인스타에 사진을 폭풍 업로드했다. 풀 세트로 맞춰 입은 골프복과 골프채가 그럴듯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면서 친구도 많고 취미 생활도 즐기는 잘나가는 MZ세대 같았다.

사회가 발전하고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서 사람들의 취미가 고급화되고 있다. 한 끼에 10만 원이 넘는 오마카세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힘들게 예약해서 비싼 밥을 먹었으면 자랑해야 하므로 사람들은 초밥 하나하나를 전부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1박에 수십만 원 하는 호캉스도 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의 월평균 소득이 229만 원, 30대 344만 원이라는데 돈 많은 사람만 업로드를 하는 건지 스마트폰 안에서는 다들 부자인 것 같다.

당연히 무리해서 과소비를 하는 케이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골프나 파인 다이닝 같은 문화생활을 향유하기에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친구들도 많다. 혹은 골프를 운동으로서 정말 좋아하거나 파인 다이닝을 찾아다닐 만큼 미식 수준이 높은 친구들도 있다.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경제적으로 충분하지도 않고 사실은 돈을 그만큼 쓸 만큼 관심이 없는데도 '남들이 하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같으니까'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이 기묘한 불편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유튜브에서 '부읽남(부동산 읽어주는 남자)' 채널에서 기막힌 표현을 봤다. 그래, 이건 '허세의 인플레이션'이다. 물가만 인플레이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있어 보이고 싶은 욕구가 이미지 중심의 소셜 미디어를 만나 끝없이 팽창하여 인플레이션 되고 있다. 과거에는 일부 여유 있는 사람만 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되었고 그러면 부자들은 차별화하기 위해 더 고급스러운 취미를 찾는다. 그 고급스러운 취미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어 다시 일반의 소비 수준을 상향시킬 것이다.

본인의 소득 수준과 취향을 넘어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것에 몰입하는 것은 기묘하다. 그것은 인생을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스타 부캐를 키우는 것이고, 무리해서 골프를 치는 것은 부캐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현질'(현금 지르기)이다. 현실 레벨업이든 인스타 레벨업이든 본인이 만족한다면야 상관없지만 한 번만 더 비판적으로 생각해봤으면 한다. 부자인 척 돈 쓸수록 진짜 부자에서는 멀어지고 타인의 취향을 무비판 복제할수록 진짜 자신을 찾는 여정에서는 멀어지지 않을까. 물가의 인플레이션처럼 우리는 허세의 인플레이션도 경계해야 한다.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