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EU 석유 금수 확정에... "유럽이 더 손해" 역공

입력
2022.06.03 15:04
노박 러 부총리 "EU 시민들이 먼저 고통받을 것"
외무부 "가격 추가 인상... EU 에너지 안보 악화"
막대한 전비 상황에 '돈줄' 끊길까 우려하면서도
'자존심' 문제... 석유 할인 판매엔 단호히 선 그어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에 러시아가 EU의 ‘자승자박’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EU 역내 시민들이 유가 급등 등으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며 금수 조치가 쓸모 없다는 얘기다. 표면상으로는 대러 제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자신하는 모양새지만, 속내는 금수 조치가 러시아에 막대한 타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2일(현지시간) EU의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로 유럽이 석유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러시아 보도전문채널 ‘러시아 24’ 인터뷰에서 “EU의 (제재) 결정은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며 “유럽 소비자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석유 제품은 유럽 이외 다른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지만 유럽 제조업자들은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구축해왔던 원자재 수입선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외무부도 이날 성명에서 “일방적인 반(反)러시아 제재는 EU에 자멸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무부는 “EU의 (제재) 조치는 에너지 가격의 추가 인상을 유발하고 시장을 불안정하게 하며 공급망을 혼란에 빠트릴 가능성이 높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역효과를 일으켜 EU의 경제 및 에너지 안보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EU의 행동으로 야기된 세계 식량 및 에너지 문제 악화 책임은 전적으로 브뤼셀과 워싱턴에 있다”고 강조했다.

EU는 이날 러시아산 원유 92%를 연말까지 금수하고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를 국제 송금과 결제 시스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ㆍ스위프트)’서 제외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6차 제재안을 채택했다. 지난달 30, 31일 양일간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사항을 대사급 회의에서 상세 조정했다. EU가 이날 채택한 제재안은 관보 게재 직후부터 발효된다.

러시아의 날선 반응은 제재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 예산에 심각한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석유 수출 대금까지 끊긴다면 국고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얘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세계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있지만 러시아는 손해를 보면서 (석유를) 판매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EU 등 서방을 제외한 새 석유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러시아가 석유를 할인 판매해야 한다면 올해뿐만이 아니라 향후에도 충격이 계속될 수 있다는 예측에서 나온 발언으로 해석된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의 마지막 자존심인 셈이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