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대역전 드라마' 쓴 김동연, 野 잠룡으로 떠올랐다

입력
2022.06.02 21:30
1면
새벽 5시 32분 '골든 크로스'... 0.15%p차 이겨
2010년 오세훈-한명숙 승부보다 더 박빙
청계천 판잣집 출신, 경제부총리까지 '입지전'

‘윤심(尹心)’을 상징하는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를 누르고 인구 1,400만 명의 경기도정을 이끌게 된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인의 2일 선거 승리는 10시간짜리 역전 드라마 끝에 나왔다. 특히 불과 0.15%포인트 차이밖에 안 나는 극적 승리라 지방선거 역사에 진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번 승부는 역대급 박빙 승부로 통했던 2010년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 한명숙 민주당 후보 간 0.6%포인트 차 승부보다 더 간격을 줄였다.

출구조사부터 밀렸지만...새벽 5시 '골든 크로스'

전날 투표 마감과 동시에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에서 김 당선인은 김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상파 방송3사는 김 후보가 0.6%포인트 앞설 것으로, JTBC 역시 김 후보가 1.1%포인트 우세할 것으로 각각 예측했다. 지난 대선에서 높은 정확도를 보였던 출구조사 결과가 김 후보에게 유리하게 나오자 희비가 엇갈렸다. 김 후보 캠프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졌지만, 김 당선인 캠프에선 적막이 흘렀다.

오후 8시 40분쯤 개표가 시작된 뒤로도 김 당선인은 김 후보에게 줄곧 밀렸다. 오후 10시 30분 기준으론 5%포인트 가까이 격차가 나기도 했다. 김 후보의 박빙 승리가 이대로 굳어지는가 싶었지만 새벽 3시쯤 반전이 일어났다. 표차가 점점 좁혀지더니 오전 5시 32분에는 급기야 '골든 크로스'로 이어지며 김 당선인이 판세를 뒤집었다. 결국 김 당선인은 0.15%포인트, 8,913표 간발의 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김 당선인 측 관계자는 "다 진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민주당 표가 많은 대도시 지역의 투표함과 사전투표함이 뒤늦게 집계되며 결과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 당선인의 승리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여권 후보 단일화를 거부한 강용석 후보의 완주도 한몫을 했다. 강 후보가 얻은 표는 5만4,758표(0.95%)로 1, 2위 후보의 표 차보다 훨씬 많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김 후보가) 강 후보와 단일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김 당선인은 승리가 확정된 2일 오전 수원시 인계동 캠프에서 “저를 지지한 분들, 지지하지 않은 도민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 도정을 운영하면서 도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겠다”고 당선 일성을 밝혔다.


청계천 판잣집 출신으로 경제부총리...야권의 차기 대권 잠룡으로

김 당선인은 서울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상고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해 9월 3·9 대선의 새로운물결 후보로 출마하며 정계에 진출한 그는 대선 직전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후보와 단일화했고 이후 지난 3월 합당 과정을 거쳐 민주당에 합류했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압승을 부른 거센 국정 안정론 바람을 인물론으로 잠재우며 잠재력을 입증한 김 당선인은 일약 야권의 차기 대권 잠룡 중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이미 대선에 한 번 도전했던 김 당선인의 궁극적 목표가 대권이라는 관측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그는 지방 맹주에 그치지 않고 중앙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김 당선인은 1인 정당인 '새로운물결' 후보로 3·9 대선에 나왔을 때 세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면서 "현재 당내 국민통합 정치교체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정치교체 화두를 던지며 뜻을 같이하는 세력을 모을 것”이라고 전했다.


도정에서 성과 내며 이재명과 '협력적 경쟁 관계' 맺을 듯

다만 당분간은 중앙정치와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도정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집·교통·일자리의 확실한 변화 △민생 제일, 혁신 경기, 잘사는 경제수도 경기 건설 △맞춤형 복지·안전망 확충 등을 주요 선거 공약으로 제시했다. 또 다른 측근 인사는 "계파 갈등과 선거 패배 책임론 등으로 민주당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큰 만큼 한발 떨어져 도정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여의도에 입성한 이재명 의원과는 '협력적 경쟁 관계'를 맺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기지사 선거에서도 이재명계 인사들이 김 당선인을 전폭적으로 돕는 등 협력적 관계"라면서도 "서로 스타일이 다른 만큼 각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