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요새 풍경도 예술... 금사강 협곡 아슬아슬 명품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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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10:00
<93> 윈난 민족 ⑤ 바오산 석두성과 다쥐

몽골 10만 대군이 남하를 시작했다.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원나라를 건국하기 전이다. 윈난을 통치하는 대리국 평정이 목적이다. 쿠빌라이가 지휘하는 군대는 쓰촨 서남부 시창을 점령한 후 서쪽으로 진군했다. 설산과 협곡이 이어지는 험로다. 금사강(金沙江)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도강이 난감했다. 현지인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나시족 창세 신화에 등장하는 충런리언이 대홍수가 닥치자 거낭(革囊)에 숨어서 살아남았다. 소나 양의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다. 몽골군이 거낭을 이용해 무사히 강을 건넜다. 역사는 ‘거낭도강(革囊渡江)’이라 기록했다.


옥빛 금사강에 소가죽 뗏목 대신 통통배

큼지막한 바위에 ‘거낭두대교’라 새겼다. 원나라 유적이라는 표지도 있다. 쿠빌라이는 대리국을 정벌한 후 남송까지 멸망시키고 원나라를 세웠다. 다리 위에서 강을 건너는 군대를 상상한다. 얼마나 많은 소와 양이 희생됐을까? 전쟁은 늘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강 동쪽 라보촌(拉伯村)에서 대교를 건너면 펑커향(奉科鄉)이다. 2014년에 개통했고 길이는 426m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거낭으로 만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 관광 상품으로 남았을 법한데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차량이 드물고 인적도 한적하다.

강변에 호젓하게 망루가 서 있다. 원나라 이후에도 전쟁의 상흔이 있었으리라. 바로 옆에 나루터 흔적도 있다. 강은 옥으로 빚은 유리처럼 투명하다. 멀리서 수면에 V자를 그리며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일행을 태우러 오는 배다.

이곳까지 타고 온 차량은 목적지로 보냈다. 산길로 약 120㎞ 떨어진 곳이다. 강을 따라 남쪽으로 16㎞를 유람할 계획이다. 하늘은 파랗고 강물은 푸르다. 대낮의 햇살이 조금 따갑지만 대자연의 숨결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중국 곳곳을 다니며 배라는 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탔다. 이곳 풍광을 최고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모터로 돌진하는 통통배는 6명 정도 타면 딱 좋다. 밀짚모자 쓴 뱃사공이 미소를 머금고 출발했다. 거낭두대교가 점점 멀어진다. 산과 구름, 하늘이 고스란히 강물 위로 스며든다. 인적 하나 없고 모터 소리만 천지에 요동치고 있다. 배의 움직임만 빼면 세상이 정지한 듯하다.

금사강은 황토를 머금어 누렇게 흐르는 강, 금빛 모래의 강이다. 우기 때 이야기다. 장장 6,300㎞를 흐르는 장강의 상류다. 건기의 황하나 장강 상류는 이렇듯 해맑은 모습이다. 칭하이성 탕구라산 봉우리에서 발원해 쓰촨성 남부의 이빈까지 3,400㎞ 구간이 금사강이다. 굽이굽이 흘러 상하이 앞바다까지 달리는 강이다.


배는 줄곧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선사한다. 절경은 멀미 날 틈을 원천봉쇄한다. 금사강은 리장 부근에서 U자로 굽어 거꾸로 북쪽으로 흐른다. 다시 설산을 끼고 크게 돌아 남쪽으로 흐른다. 그 물줄기를 지금 지나고 있다.

양쪽으로 높은 봉우리가 이어진다. 좁아졌다가 넓어지기를 반복한다. 12월인데도 정말 포근하고 청아하다. 협곡을 돌파하는데도 고요하게 흐른다. 수심은 아주 깊다. 오른쪽으로 웅장한 태자관(太子關)이 보인다. 수면에서 거의 1㎞나 솟은 봉우리다. 허리춤에 길이 있어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도강한 몽골군이 지나갔을 길이다.

산비탈에 다랑논, 천혜의 경관 품은 석두성


협곡을 들락날락하며 보석만큼이나 아름다운 강을 스치니 시간이 쏜살같다. 1시간 30분이 눈 깜짝할 사이 흘렀다. 부두에 도착하니 조금 아쉽고 서운하다. 그냥 리장까지 가고 싶을 정도다.

고개 들어 앞을 보니 목적지다. 가파른 절벽에 옹기종기 살아가는 석두성(石頭城)이다. 리장의 위룽나시족자치현(玉龍納西族自治縣) 바오산향(寶山鄉)에 속한 마을이다. 삼면이 낭떠러지인 난공불락이라 몽골군도 그냥 지나쳤다는 말이 있다.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까닭이 없었으리라. 언덕을 40분가량 계속 오르니 동문이 나타난다. 문을 지나 골목을 요리조리 오른다. 성벽 옆을 따라 올라가니 객잔이다.

목가객잔(木家客棧) 2층에 방을 잡았는데 바로 옆에 탁자가 놓인 테라스가 있다. 협곡을 흐르는 금사강과 산 능선을 따라 가지런한 다랑논이 보인다. 언덕을 오르느라 흘린 땀이 맥주 한 잔 들이키기도 전에 씻겨 나간다. 전망이 예술이다.

여행의 맛은 언제나 자리가 태반을 차지한다. 하루 종일 바라만 봐도 좋은 자리가 바로 명당이다. 육로가 아니라 강을 따라 뒷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인가. 온몸이 흥분으로 떨린다. 몰래 훔쳐보는 일이 더 재미나지 않던가. 여행도 남들과 달라야 추억이 오래 쌓인다. 해가 진다. 해 뜨는 풍광도 좋으면 금상첨화!

동트기도 전에 부스스 일어났다. 수천 개 별이 여전히 빛나는 시간이다. 머릿속이 반짝반짝하고 무념무상이다. 상대조차 될 리 없는 눈빛으로 검은 하늘을 쏘아본다. 점점 별빛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동쪽으로 해가 살살 떠오른다.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는 강으로 시선을 옮긴다. 반짝거리며 물결을 일으키는 듯하다. 금빛 모래 대신에 파르르 떠는 햇살을 반영으로 담아내고 있다. 봉우리 넘어온 해가 금방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어느새 강물은 평소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아침밥을 먹고 마실 나선다. 골목 따라 내려가니 마당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꼿꼿하게 섰다. 뒷산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쪽 절벽으로 좁은 길이 있다. 사람이나 말이 오르내리는 샛길이다. 석두성을 한 바퀴 둘러보기 딱 좋다.

태자관 아래로 구석구석 군락을 짓고 살아가는 마을이 여럿이다. 구름이 지나며 봉우리를 감싸듯 그늘을 드리운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빠르게 서두른다. 바위산과 흙으로 덮인 산이 나란하다. 마을로 다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광장이 있다. 저녁이면 마을 사람 모두 나와 춤을 추고 즐기는 공간이다. 뒤돌아보니 앞산에 있는 마을이 보인다. ‘야크 마을’이란 뜻의 모우채(牦牛寨)다. 산비탈에 조성된 마을로 다랑논을 개척해 살아왔다. 모우채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석두성으로 들어오는 입구다. 육로로 이어지는 길이다. 산 위에 주차장이 있어 차량이 진입할 수 있다. 말에 짐을 싣고 들어오는 관광객이 많다. 석두성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있다. 성 중점 문물이라는 표지와 함께 아치형 문에 ‘공산당(共產黨) 안녕(好)’이란 인사가 붙어 있다. 지금은 원나라 시대가 아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성벽과 포대가 있다. 암반 위에 지어 까마득한 절벽이다. 위험천만한 마을 윤곽이 드러난다. 완벽하게 방어가 용이한 지형이다. 협곡 끼고 강이 흐르고 험준한 봉우리가 방어막을 이루고 있다. 천혜의 입지조건이다. 강도 더 잘 보이고 앞산과 뒷산 마을도 훨씬 환하게 드러난다.

‘원사(元史)’에 따르면 당나라 중기에 나시족 조상이 이주했다. 원나라 초기인 13세기에 내성과 외성을 쌓고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아왔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비적의 공격을 막으려고 지금의 성벽과 성문, 포대를 갖췄다. 하늘이 내린 땅은 관광지가 됐다. 100여 가구가 산다. 객잔이 꽤 많다. 아무리 오지라 해도 못 갈 곳 없는 세상이다. 외부에 알려져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만큼 독특한 관광지는 흔한 편이 아니다.


성벽에서 내려오는데 나시족 할머니가 상냥하게 손짓한다. 훠탕(火塘) 위에 냄비가 놓였고 옆에는 새까맣게 변한 주전자가 있다. 항아리 몇 개와 호롱불도 있다. 차와 곡물을 섞는 대나무 통도 있다. 천천히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석두성 민간 박물관이다. 바로 밑에 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데려간다. 선인장처럼 잎이 아주 넓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잎사귀 사이로 바라보니 어제 묵었던 객잔이 보인다. 2층 명당이 코앞에 있다.


객잔에 잠시 들렀다가 마을을 떠난다. 광장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햇볕을 쬐고 있다. 오지일수록 노인만의 보금자리다. 간밤의 안부를 묻고 노닥거리는 장소다. 객잔 할머니도 나와 있다. 가볍게 작별인사를 하고 모우채 골목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짐 옮기는 말이 위로 지나간다. 우리 일행은 육로로 이동한 차량에 짐을 두고 맨몸으로 왔다. 누군가 마을로 들어서는 듯하다. 골목 따라 올라갈수록 석두성 자태가 또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지붕에 낯선 판자가 보인다. 야릇하게 생겨 자연스레 꼼꼼하게 본다. 용마루 따라 시옷 자로 펼친 모양이다. 중간에는 마치 오징어처럼 생긴 판자를 잇댔다. 개(個)의 간자체인 개(个) 자 형태다. 양쪽으로 뻗은 팔(八)은 박풍(搏風)이다. 아래로 뻗은 판자는 현어(懸魚)라 하는데 나시족 가옥에 흔하게 등장한다.

예전에도 본 기억이 나서 인상이 깊다. 한두 개도 아니고 지나는 집마다 있어 건축 문화로 읽힌다. 처음에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던 이름이 굳어졌다. 다른 지방에도 있다. 꽃이나 박쥐 등 문양도 다양하다. 밋밋한 처마와 비교하면 볼수록 예쁘다.


모우채 위로 더 올라가서 바라봐도 여전히 석두성은 아슬아슬하다. 암반 위에 어떻게 지었길래 오랜 세월 무던히 명맥을 이었을까? 계속 걸어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차를 타고 출발해 고개를 넘기 전에 다시 내렸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일이다.

석두성 아래 강과 멀리 바위산이 함께 시선에 잡히니 더욱 신비한 느낌이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자 했던 용기와 지혜가 빚은 명품이다. 흔하게 보기 어려운 마을이다. 저렇게 위험한 곳에서 잠을 잤다는 아찔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하룻밤 보낸 시간이 꿈결 같다.


석두성이란 지명은 중국에 꽤 많다. 이곳은 바오산(寶山)을 앞에 붙여야 한다. 나시족은 라보루판우(拉伯魯盤塢)라 부른다. 일반명사보다 정감 어린 말이다. 향 정부가 있는 곳까지 산길로 1시간이다. 바오산을 빠져나와 남쪽 리장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다시 1시간을 달려 밍인진(鳴音鎮)에 도착한다. 딱 배고픈 시간이다.

뚝배기에 끓여주는 쌀국수가 보인다. 한국 여행객은 영상 10도 넘는 12월이 춥지 않다. 나시족 현지인은 달랐다. 식당 안에 훠탕이 있다. 옆자리에 살짝 붙어 불을 쬔다. 현지인과 더불어 손을 드러내니 불의 온기보다 먼저 가슴이 뜨겁다. 게눈 감추듯 국수를 먹었다. 온정은 국수 값에 포함하지 않아 더욱더 기분 좋은 여행이다.

봐도 봐도 지겹지 않은 옥룡설산

밍인을 떠나 10여 분을 이동해 고개에서 멈춘다. 잔뜩 구름을 뒤집어 쓴 옥룡설산이 장엄하게 등장한다. 나시족은 어우루(歐魯)라 한다. 하늘과 딱 붙었으니 천산(天山)이란 뜻이다. 해발 5,000m가 넘고 70㎞를 뻗어나간 산맥이다. 거대한 용이 승천해 날아가는 상상의 나래가 그럴듯한 옥룡(玉龍)이다.

산 넘어 북쪽에 또 하나의 설산인 합파설산(哈巴雪山)이 있다. 티베트까지 가는 마방의 무역로인 차마고도가 바로 합파설산 능선을 질주한다. 두 설산 사이에 호랑이도 뛰어넘는다는 호도협(虎跳峽)이 이어진다.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금사강이다. 호도협은 금사강을 기준으로 상·중·하로 나눈다. 고개 넘어 1시간 굽이굽이 달려 하호도협에 위치한 다쥐향(大具鄉)에 도착한다.


설산 최고봉은 5,596m, 평지는 1,650m다. 고개 들면 목이 아플 정도다. 설산 아래로는 강이 흐른다. 인구 1만 명인 마을이다. 농업과 목축으로 살아간다. 설산 위로 햇살이 강렬하게 쏟아지고 있다. 초록의 농작물이 익어간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녀도 인기척이 없다. 제 세상 만난 듯 소리치며 날아다니는 새떼만이 마을을 지키는 듯하다. 대문이 활짝 열린 마당을 들여다본다. 지붕 뒤로 설산이 살포시 보인다. 아늑한 고향에 온 느낌이다.


설산은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다. 설산 아랫동네에서 하루 묵는다. 객잔 지붕에도 현어가 걸려 있다. 창문을 여니 바로 옆에 나타난다. 리장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마을이다. 하루에 두 번 버스가 다닌다고 적혀 있다. 호도협 트레킹과 연결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당에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넓고 얇은 돌을 올린다. 삼겹살과 감자가 올라가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불도 돌도 어디나 있다. 삼겹살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맛은 똑같다. 그러나 기분마저 같지는 않다. 다쥐향에서 먹은 삼겹살은 달랐다. 발품 내음이 점점 금사강 따라 흐르고 설산으로 날아간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