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회사에서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50대 남성입니다. 나름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기에 지금도 사회 변화에 민감하고, 진보적인 움직임에 동참하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소싯적 여성주의자 친구들과 토론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 신문을 볼 때마다 '젠더 이슈' '젠더 감수성' '젠더 폭력' 이런 단어들이 넘쳐나는데, 사실 왜 이렇게 '젠더(gender)'가 폭발적인 이슈가 됐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사내에 점점 젊은 여성 직원도 많아지고, 혹시나 실수를 할까 싶어 서점에서 여러 책을 뒤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평생 남성으로 살아와서인지 단숨에 이해하기가 쉽진 않더군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기초적인 질문을 하기엔 젠더 감수성(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할까 꺼려지기도 하고요. 저 같은 사람도 젠더와 친숙해질 수 있을까요. (김 부장·53·회사원)
A. 짝짝짝! 먼저 김 부장님의 노력에 큰 박수를 드립니다. 사실 자신을 둘러싼 이슈가 아닌 이상,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알아보려는 시도를 하기 참 쉽지 않죠. '중년 남성'의 세계를 살다가 '젠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이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성(性)을 일컫는 다른 단어로는 섹스(sex)가 있죠. '생물학적 성'을 일컫는 섹스는 출생 시 부여되는 성별입니다. 생식기가 그 판단 근거가 되지요. 똑같이 한국어로 '성'이라 번역되는 젠더는 사회,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성을 의미해요.
젠더 관점에서 보면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태어나자마자 갖추는 특질이 아니에요.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와 같은 구분은 정말로 자연스러운지 근본적으로 의문을 던지는 개념이죠.
Q. 그 뜻은 잘 알겠지만 누군가를 보고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 생각하게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나요? 예를 들어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성을 보고 남성미를 느낀다거나, 긴 머리의 연약한 여성을 보고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사람의 본능일 텐데요. 이런 생각을 내뱉으면 어딘지 모르게 성차별적 편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고민입니다.
A. 매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김 부장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 볼게요. 대퇴부의 커다랗고 단단한 근육은 꼭 남성의 전유물이어야 할까요. 혹은 장발의 왜소한 체형의 남성은 '남성다움'을 거스르는 걸까요. 여성이라고 해서 늘 보호받아야 하고, 남성은 보호하는 주체여야 할까요. 젠더는 바로 이 같은 '성별 이분법'에 기반한 고정관념에 대항합니다.
여기서 한번 의문을 던져 볼게요. 남성과 여성은 선천적으로 얼마나 다른 걸까요. 물론 생물학적 차이는 구별을 낳습니다. 그런데 성별 고정관념의 가장 큰 문제는 구별이 아닌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여자아이는 언어를 잘하고 남자아이는 수학을 잘한다' '남자는 논리적이고 여자는 감성적이다' 등의 검증되지 않은 고정관념으로 인해,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Q. 궁극적으로 젠더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A. 한국다양성연구소의 김지학 소장에게 물었습니다. 김 소장은 "성인지 감수성(젠더 감수성)이라는 단어에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어, 감정적이거나 예민한 것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는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되거나 불편함을 간파할 수 있는 관점 혹은 역량, 그리고 이를 고치고자 하는 실행력을 일컫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무엇이 불편한지 알 수 있는 관점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늘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남성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불편함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젠더 감수성은 몇 점? 김 부장님과 같은 고민을 갖고 계신 분들을 위해 고용노동부의 '성인지 감수성 점검' 문항을 가져 왔어요. 정확한 진단을 위해 평소 생각이나 행동과 가장 가까운 것에 표시한 뒤 점수를 매겨주세요.
※ 매우 그렇다(1점), 그렇다(2점), 보통(3점), 그렇지 않다(4점), 전혀 그렇지 않다(5점)
1. 나는 평상시 직원들의 외모나 옷차림새에 대한 얘기를 가끔 하는 편이다.
2. 술자리에서 가끔 성적 농담을 하는 직장 동료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3. 사소한 성적 언동까지 성희롱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조직문화를 경직되게 만든다.
4. 나는 성희롱을 목격하거나 들었을 때 문제 제기하거나 도움을 주는 등 나서지 않는다.
5. 나는 직원들과 격려나 친밀감의 표시로 신체적 접촉을 자주 하는 편이다.
6.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여성 동료를 보면 성희롱에 많이 노출될 것 같다.
7. 성희롱은 대부분 피해자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8. 성희롱 피해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성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의사소통 기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9. 고객서비스 부서나 상담 부서의 경우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해 여성 직원이 맡는 것이 더 적합하다.
10. 나는 평상시 남자가~ 여자가~ 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11. 나는 여성 직원에게 결혼이나 출산 계획에 대해 가끔 물어보는 편이다.
12. 직장에서 여성은 여성답게 남성은 남성답게 복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3.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을 보면 '승진을 포기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4. 우리 회사는 복사, 회식장소 예약, 동료 생일 챙기기 등 비업무적인 일은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다.
15. 우리 회사는 직원 화합을 위한 행사에서 남녀를 구분하여 참여하도록 기획한다.
16. 나는 성희롱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사내 공식적, 비공식적 절차에 대해 잘 모른다.
17. 우리 회사는 성희롱 사건 당사자의 비밀 보호에 소홀하다.
18. 평소 경영진과 관리자는 성희롱 예방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19. 우리 회사는 성희롱 행위자에 대해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형식적으로 하더라도 피해자를 보호하지는 못할 것 같다.
20. 우리 회사는 성희롱 발생 시 정해진 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편이다.
※ 참고 문헌
-김연주 "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 2017.
-아이리스 고틀립 "뷰티풀 젠더", 까치 2020.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행성B 2018.
※ 한국일보 젠더 뉴스레터 '허스토리'가 '허스펙티브'로 6월 9일 돌아옵니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서사를 복원하고, 불편한 시선을 바로잡으며,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멋진 여정에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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