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훌륭한 변심

입력
2022.05.3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또 여성 전문가를 발탁했다. 이인실 특허청장이다. 26일 박순애(교육부)·김승희(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지명에 이어 네 번째다. 인수위부터 장·차관까지 뚜렷했던 여성 배제 기조가 뒤집혔다. 윤 대통령은 24일 김상희 국회부의장에게 “공직 인사에 여성에게 과감히 기회를 부여하도록 하겠다. 시야가 좁았다”고 말하더니 즉시 행동으로 보였다. 이런 학습능력과 실행력이라면 정치 초보라는 단점이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 대통령의 변심은 21일 한미 정상회담 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남초 내각’을 질문한 충격의 여파로 보인다. 최근 윤 대통령을 ‘안티페미니즘에 기반해 당선된 포퓰리스트’로 규정한 외신 보도가 잇따라 나온 것도 자극이 됐을 것이다. 대선 기간 내내 국내 언론이 문제를 지적했을 땐 꿈쩍 않던 것이 아쉽지만 바람직한 변화에 박수 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무리 표가 급해도 성평등에 반대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뒤처진 후진적 주장임을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 그는 여성 공직자 후보의 낮은 근무평가에 대해 한 참모가 “남성 위주 조직에서 여성이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게 누적돼 그럴 것”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도 했다. 구조적 성차별의 현실을 처음 맞닥뜨린 충격이겠다. 윤 대통령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성범죄가 얼마나 만연하고 처벌은 가벼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성 경력단절과 임금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알게 될 것이다.

□ 이 충격적 자각을 윤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는 것으로 완성하기를 바란다. 사실 안티페미니즘 전술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것이었고, 선거결과로 실패가 확인된 것이다. 여가부 존속을 공언하면 잃을 것은 작고 국민 통합과 대외 이미지라는 큰 것을 얻게 된다. 이 대표는 28일 “팬덤 정치를 부수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페이스북에 썼다. 자신이 팬덤 정치와 맞선 사례로 “탄핵은 정당하고 부정선거는 아니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 이번엔 “안티페미니즘은 틀렸고 여가부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할 때다. 이 대표도 함께 한다면 좋을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