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탐정] <6> 현대자동차 LNG발전소 건설
현대자동차그룹이 ‘2045년까지 사용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며 RE100 가입을 밝힌 건 4월 25일. ‘2050년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 달성을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에 동참한 것이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RE100 캠페인을 주관하는 국제 비영리단체 ‘클라이밋그룹(Climate Group)’에 따르면 단체는 지난 20일(현지시간) 현대차에 긴급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 건설 계획이 ‘2045년 재생에너지 100%’ 달성이라는 현대차의 목표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설명하라는 질문이 담겼다. 가입 승인 약 2주 만에 현대차의 LNG발전소 건설 계획이 알려져서다. 현대차가 질의에 충분한 해명을 하지 못한다면 가입 철회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클라이밋그룹은 ‘현대차의 행보가 RE100 캠페인의 신뢰도에 상당한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며 해명도 요청했다. 환경단체들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클라이밋그룹 관계자는 “현대차의 RE100 가입 신청 및 심사 과정에서 LNG발전소 건설 계획을 알지 못했다”며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RE100은 기업 사용 전력 전체(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이며, 2022년 5월 현재 가입 기업은 371개로 이 중 국내 기업은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19개사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자발적 협약이지만, 기업의 대외 이미지는 물론 수출경쟁력에 직결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를 충족하기 위해 거래 업체를 바꾸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애플의 협력업체인 SK하이닉스가 RE100에 참여하게 된 것도 애플의 압박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 신뢰를 쌓아가는 RE100이지만, 한국에선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충 노력이 미흡한 상황에서 'RE100' 가입마저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이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울산광역시 북구의 현대차 공장 내 1만7,000㎡ 용지에 대규모 LNG 열병합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발전용량은 184㎿로 가스터빈 2기와 증기터빈 1기가 설치될 예정이다. 발전소 건설 시 울산공장이 한국전력을 통해 공급받는 연간 전력 소요량(129만MWh)의 약 70%를 자체 조달할 수 있다. 현대차는 현재 진행 중인 환경부 환경영향평가가 끝나는 대로 공사를 시작해 2025년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LNG발전소 건설 소식은 현대차의 RE100 가입 약 2주 뒤에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4개 계열사(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위아)는 지난해 7월 RE100 가입을 신청해 지난달 25일에야 승인받았다. 약 1년간의 심사를 거쳤지만 가입 직후 화석연료에 대한 추가 투자를 밝힌 것이다.
그린피스·청소년기후행동·액션스픽스라우더(Action Speaks Louder) 등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30일 성명을 통해 “현대차의 LNG발전소 건설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RE100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현대차의 RE100 가입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홍보 수단이자 그린워싱”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는 “이번 투자가 화석에너지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재생에너지 전환 단계와 맞물려 있다”는 입장이다. 발전소 건설이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이고 탄소배출량을 낮추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현대차는 “준공 예정인 LNG복합화력발전소를 통해 열과 전기를 함께 생산하면 에너지 효율을 20% 이상 향상시키고 실질적 탄소감축도 가능하다”며 “향후에는 LNG 사용을 중단하고 수소 발전소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클라이밋그룹 측은 “RE100 캠페인에서는 화석연료인 LNG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RE100의 기술기준에 따르면 회원 기업이 재생에너지 100% 달성을 위해 활용 가능한 에너지원은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 등으로 한정돼 있다.
현대차의 LNG발전소 건설은 오히려 RE100 가입사 자격이 박탈될 수 있는 행위다. 가입기준 7조에 따르면 자산 중 화석연료가 늘어나는 것을 RE100의 취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이번 사안에 대해 해명하지 못할 경우 가입 철회를 결정하는 자문위원회에 회부될 수도 있다. 클라이밋그룹 관계자는 “현재 내부 기술위원회가 현대차와 다음 단계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LNG발전은 불가피한 선택지라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국 시장은 단기적으로 재생에너지 도입이 어렵다”며 “현재 (화석연료 위주의) 전력시장 믹스보다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있는 LNG발전소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발전소 건립과 관련해 작성한 ‘환경평가항목 등의 결정내용’에서 LNG를 ‘친환경 연료’라고 표현했다. LNG 사용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및 대기환경 개선이 가능하다는 이유다.
LNG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석탄화력발전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LNG의 생애주기 온실가스배출량은 킬로와트시(kWh)당 490gCO₂eq이다. 석탄 배출량(820gCO₂eq)의 약 60% 수준이다. CO₂eq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이산화질소 등 여러 온실가스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한 '탄소환산량'을 뜻한다.
하지만 태양광(48gCO₂eq)이나 풍력발전(11gCO₂eq)에 비하면 LNG의 온실가스 배출은 지극히 높다. 더욱이 LNG의 주 성분이 메탄임을 고려하면 그 영향이 과소평가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탄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80배를 넘는다. 같은 양이더라도 온난화를 더욱 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천연가스를 시추·채굴하고 운송하는 과정에서 상당량의 메탄이 누출된다. 또한 LNG 발전소 가동 시 불완전 연소로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될 수도 있다.
그 외 대기오염 물질 배출도 상당하다. 기후솔루션·서울환경연합 등 기후환경단체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서울 당인리발전소(LNG발전·서울복합화력발전소)의 2020년 질소산화물은 222톤으로 서울의 주요 쓰레기 소각장 3곳의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도 많았다. 질소산화물은 천식·만성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며, 초미세먼지와 오존 생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국내 RE100 가입 기업 중 일부는 ‘대안이 없다’며 LNG발전소 건설을 택하고 있다. 국내 전력생산의 60%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직접 구매를 위한 제도가 미비하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2020년 RE100에 가입한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에 ‘스마트에너지센터’라는 이름으로 LNG발전소를 짓고 있다. 이천은 내년, 청주는 2024년쯤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RE100에 가입한 고려아연 역시 같은 해부터 울산에서 자체 LNG복합화력발전소를 가동 중이다. 다만 클라이밋그룹 측은 "이 두 기업의 LNG발전소 증설 계획은 RE100 가입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며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현존하는 재생에너지 기술이나 제도만 가지고서는 화석연료를 완벽하게 대체하기 어렵다”며 “LNG발전을 활용하면서 대기오염 배출 등을 최소로 설계해 가동하려 하는 만큼 RE100에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가스발전을 포함시킨 것도 기업들이 LNG발전소 건설을 계획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녹색분류체계에서는 가스발전을 2030~2035년 한시적으로 ‘전환부문’ 녹색산업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에너지 전환과정에서의 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kwh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340gCO₂eq 이내이면서, 향후 배출량을 설계 수명기간 평균 kwh당 250gCO₂eq까지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경우라는 조건이 달린다.
LNG발전소 건설 계획의 경제성 문제도 나온다. 2045~2050년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고려할 때 겨우 20년 남짓 가동한 뒤 폐쇄하는 '좌초자산'(사업 여건 변화로 수익이 나지 않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인 트랜지션제로(Transition Zero)의 재클린 타오 연구원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LNG 가격을 고려할 때 현대차의 계획은 경제성이 낮다"며 "LNG발전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재생에너지로 이행하는 것이 기후대응 목표는 물론 경제적 타당성도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탄소배출은 무역과 투자의 장벽이 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도입하려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논의 중인 기후 리스크 공시 의무화 등에 따라 탈탄소 경영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기업의 탄소배출 정보 공시 해외 논의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전력 생산을 시급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를 위해 제도와 행정 절차를 정비하고 전력시장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RE100에 가입한 대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정책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여건이 약하다는 이유로 LNG발전을 택하는 행보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RE100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기업들이 나서서 정부에 재생에너지 확충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