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신음하고 있는 중남미 콜롬비아에서 사상 최초로 좌파 대통령 선출이 유력해지고 있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이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중남미 주요 6개국(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페루)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2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선거당국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연합 ‘역사적 조약’의 후보 구스타보 페트로(62)가 40.8%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무소속 로돌포 에르난데스(77)가 28.2%로 2위를 기록했다. 콜롬비아 대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 후보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가 결선을 치른다. 결선은 내달 19일이다.
연초부터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페트로 후보는 10대 때부터 무장 반군세력인 M-19(The April 19 Movement)에서 활동했다. 1989년 M-19가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페트로 후보도 본격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다. 2012~2015년 수도 보고타의 시장을 지냈으며 현재 콜롬비아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페트로 후보의 선전에는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현 우파 정권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콜롬비아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여느 남미국가처럼 경제상황이 크게 악화했다. 2022년 기준 빈곤선 이하 인구 비율이 40%를 넘고, 청년 실업률도 20%대다. 올해 4월 기준 물가상승률도 연 9.2%를 기록하면서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심해졌다.
페트로 후보는 서민들의 불만을 파고들었다. 약 4,000명으로 추산되는 최상위 부유층에게 세금을 부과해 확보한 재원으로 무상 고등교육, 빈곤층 실업자에 대한 지원금 제공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악명 높은 자국의 마약 범죄 척결도 약속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반 두케 현 대통령이 경기침체는 물론 부패와 범죄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좌파 출신 페트로가 강력한 차기 주자로 급부상했다”고 분석했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러닝메이트 프란시아 마르케스(40) 부통령 후보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페트로 후보가 당선되면 최근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핑크 타이드(좌파 득세)’ 열풍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미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중남미 주요 국가에는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10월 치러지는 브라질 대선에서도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다. 미국 CNN은 “중남미에 좌파 정권이 연이어 들어설 경우 가뜩이나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기업가 출신으로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에르난데스 후보가 결선에서 역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동부 부카라망가 시장(2016~2019년)을 지낸 그는 ‘콜롬비아의 트럼프’라 불리며 소셜미디어 틱톡 등을 통해 포퓰리즘적 공약을 내놓으며 표몰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