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州) 패어팩스카운티 T중학교. 오전 8시 10분 420여 명의 학생들이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가 21분 동안 침묵 시위를 이어갔다. 사흘 전 텍사스주 유밸디 롭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참극 희생자 21명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 교장은 소식을 알리는 주간 이메일에서 학생들의 행동을 소개한 뒤 학교 안전을 위한 건물 출입 보안 등을 강조했다. 충격적인 참극에 따른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고려한 심리상담 안내도 곁들였다.
스콧 브래브랜드 패어팩스카운티 교육감도 이메일에서 총기 난사 규탄과 함께 △미국 내 최첨단 학교 보안 시스템 보유 △총기 안전 수업 학교 교과 과정 포함 △비극적인 사실을 알게 된 학생 심리상담 지원 자료 제공 등을 강조했다.
학생 19명과 교사 2명 등 21명이 희생된 텍사스 총기 난사 참극 이후 미국 전역의 학교가 대응하는 방식은 대체로 유사하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총기 폭력을 규탄하고, 학생 안전 시스템과 심리 상담을 강화하는 식이다. 하지만 미국 내 총기 난사, 특히 학교 내 희생을 근절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좌절과 분노도 커지고 있다.
오하이오 레이놀즈버그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리니 콜리는 사건 다음 날 6학년 학생들에게 텍사스 총기 난사 뉴스를 설명했다. 몇몇 학생들은 ‘슬프다’고 답했고 희생된 학생들이 너무 어리다는 데 경악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화는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미 AP통신에 털어놓았다. “그들은 이 같은 일을 수없이 맞닥뜨렸다. 그들에게는 그저 또 다른 하루의 뉴스일 뿐”이라는 것이다.
해군대학원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에만 미국 내 학교에서 총기 폭력 사건이 504건이나 발생했다. 2012~19년 8년간 발생했던 숫자와 비슷하다. 특히 1999년 컬럼바인고교 사건 이후 학교 내 대형 총기 난사 사건만 15건이나 된다고 미 CNN은 전했다. AP는 “2012년 이후 학교 총기 난사로 총 73명의 학생이 사망했다”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반복되는 참극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총기 난사를 막을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사건 직후에만 반짝 커지다 곧 사그라지기 일쑤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사회과 교사로 일하는 니콜 페터먼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서 듣는 말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좌절감”이라며 “(미국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유일한 나라인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해서도 많은 분노가 있다”라고 AP에 밝혔다.
버지니아대 버지니아 청소년 폭력 프로젝트 책임자 듀이 코넬은 AP에 “대부분의 살인은 가정, 거리 또는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다. 학교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라면서도 “미국이 학교 내 정신건강을 담당할 노동자의 오랜 부족 사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학교에서 대량 총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충격적인 2년을 보낸 후에도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학교는 도움을 줄 자원이 부족하다고 미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기에 점점 더 분열되는 미국 내 정치 문화 풍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AP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