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하면 깡패지 검사입니까?”

입력
2022.05.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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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받던 최측근’ 한동훈 임명의 문제
검찰 인사, 권한 집중으로 우려 커져
‘전 정권 더 나쁘다’로 정당화 안 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는 희극이었으나 그 뒤끝은 우울하다. 야당 코미디에 웃고 ‘한동훈과 조국 중 누가 더 나쁘냐’를 비교하는 사이 이 인사가 정당한지 따져볼 시간을 잃었다. 여당은 ‘결정적 한 방’이 없다고 했지만 원칙적으로 한 장관의 ‘결정적 한 방’은 윤석열 대통령이 최측근을 임명한 것 자체다. 핍박받던 측근 검사에게 권력을 쥐였으니 검찰 직할과 사정 바람이 우려되는 게 당연하다. 그 조짐은 커지고 있다.

한 장관은 취임 다음 날 검찰 인사를 단행, ‘윤석열 사단’을 전면 배치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인사권도 없는 식물 총장”이라며 장관의 ‘총장 패싱’을 자조했는데, 한 장관은 총장 공석을 틈타 검찰인사위원회도 건너뛰었다. 윤 총장 시절 말이 많았던 형사부 홀대, 특수부 중용이 재연됐다. 더욱이 법무부는 공직자 인사검증 기능까지 떠맡았다.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 폐지를 공약한 취지는 “정치적 반대파를 통제하려는 유혹을 막겠다"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실세 장관이 민정수석을 겸해 ‘사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란 공포가 번진다.

한 장관 자신의 인식도 정의와 공정, 검찰 독립 수호 의지가 의심스럽다. 원칙을 밝혀야 할 순간 그는 ‘문재인 정부가 더 나쁘다’로 응대했다. 19일 국회 예결위에서 정치검사가 출세한다는 통념에 대해 “지난 3년이 가장 심했다”고 반격했고, 반윤(反尹) 검사들을 한직으로 내몬 인사에 대해선 “나도 법무연수원에서 성실히 근무했다”고 답했다. 내가 당했으니 되갚아도 된다는 뜻이라면, 바로 그것이 장관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장관으로서 철학도 선택적이었다. ‘검수완박 저지’ 발언은 “법무장관 후보가 몸 사리고 침묵하는 건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라고 해놓고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된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해선 "인사권자의 결정"이라고 답변을 피했다. 이런 식이면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공직자 성비위에 대한 입장을 물어서도 안 되겠다.

그가 명료한 말솜씨로 청문위원들의 질문을 무력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명석함이 올바름을 뜻하지는 않는다. 표절률이 60%나 되고 대필 의혹마저 제기된 딸의 논문은 “입시에 활용하지 않았다”는 해명과 무관하게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논문이 아니라 전자문서화하기 위해 업로드한 것”이란 답은 궤변이라 할 법하고 "오픈 액세스 저널은 간단한 투고 절차로 게재가 완료되는 사이트"라 한 것은 학계를 모욕하는 것이다. 그는 “자녀에게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가르치지 못해 송구하다”고 사과해야 마땅했다. “대입 스펙 경쟁의 부작용을 심각하게 보고 개선토록 노력하겠다”고 해야 옳았다.

한 장관은 유능한 검사였다. 장관으로서도 능력껏 일할 것이다. 그가 부활시킨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은 코인 사기 등 수사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가 검찰을 불신하고 한 장관의 법무부를 우려하는 이유는 무능이 아닌 정치화에 있다. 검찰을 고스란히 뒤집는 것은 ‘정상화’가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전 정권이 더 나쁘다’고 해서 정당해지지 않는다. 한 장관이 정당성을 확보할 길은 얼마 전 사임한 김수현 전 창원지검 통영지청장의 글에 담겼다. 그는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능력이 출중하다는 설명으로 '윤핵관'으로 불릴 세력에 편중된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며 탕평 인사를 당부했었다.

국정원 댓글 수사로 좌천됐던 윤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복귀하며 일각의 ‘보복’ 우려에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답했다. 덜 나쁘거나 더 유능함을 인정받기에 앞서 깡패가 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