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밤 장관 후보직을 사퇴했다. 스스로 물러나는 형식을 취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뜻으로 해석된다.
정 후보자 거취를 정리함으로써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협치를 손짓했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50%대를 돌파한 데 대한 자신감도 묻어난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한미정상회담이 이어진 '슈퍼위크' 효과로 상승세를 탄 만큼, 정 후보자 낙마의 후유증도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깔렸다.
이날 정 후보자는 늦은 밤 입장문을 통해 “윤 정부의 성공을 위하고, 여야 협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복지부 장관 후보직을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0일 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 43일 만으로, 새 정부 1기 내각 두 번째 낙마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그간 정 후보자는 자녀의 의대 편입 특혜 의혹을 비롯한 각종 논란에 “떳떳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여당인 국민의힘마저 ‘임명 반대’ 입장을 밝히며 등을 돌리자 결국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사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대통령실 주변에선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을 결사반대하던 민주당이 한발 물러난 만큼, 이번엔 윤 대통령이 협치 의지를 보여야 할 차례라는 의견이 나왔다. 시간을 끌수록 ‘협치 카드’로서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르면 이날 결론을 내릴 것이란 관측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역시 정 후보자 관련 의혹이 ‘조국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임박한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다만 윤 대통령 스타일상 직접 지명을 철회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변수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 출근하면서도 “(정 후보자의 거취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자진 사퇴가 정 후보자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줄 최소한의 장치라고 판단해 퇴로를 확보해 준 셈이다.
정 후보자에 대해 “부정(不正)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펴온 윤 대통령이 낙마 결심을 굳힌 데는 지지율 상승세에 따른 자신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국무위원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부실검증 논란이 일게 되고 결국 초반 국정 동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부담을 덜어낸 것이다.
실제 최근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조금씩 우호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 2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55.7%, 부정 평가는 38.8%였다. 같은 기관에서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달 8, 9일 실시한 조사는 긍정 평가(48.4%)와 부정 평가(47.5%)가 팽팽했는데, 지난 5·18 기념식 참석 등 협치 행보와 20~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거치며 반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