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러시아 LNG선 싹쓸이 '조선3사' 초비상

입력
2022.05.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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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제재로 러시아 선주 대금 지급 길 막혀
대우조선 러시아 선주에 첫 계약해지 통보
러시아 수주 총 10조…계약해지 잇따를 듯

서방의 금융제재로 러시아 선주의 대금 미지급 사태가 빚어지면서 10조 원 규모의 러시아 수주물량을 보유한 국내 조선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현실적으로 러시아 선주가 국내 조선사에 대금을 지급할 길이 마땅치 않아 업계는 '대규모 계약해지 사태'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대우조선, 러시아 선주에 계약해지

22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8일 2020년 10월 러시아 선주(노바테크 추정)로부터 수주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쇄빙선) 3척(계약금액 1조137억 원) 중 1척을 계약해지했다고 공시했다. 선주가 건조 대금을 기한 내 지급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업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당했는데, 이번 사태로 러시아 선주가 정상적으로 선박 대금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1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러시아 선주에게 수주한 선박은 총 5척(16억 달러·2조368억 원)이다. 모두 1년 안에 선주에게 인도하는 일정이다. 업계는 대우조선이 나머지 4척 역시 계약해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클 걸로 예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통 선주에게 문제가 생기면 양측이 협상해 대금 납입날짜를 연기해 주는데 곧바로 계약을 해지한 건 금융제재 탓에 기업 차원에서 대금을 받을 길이 없다고 보고 사실상 손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50억 달러·25척)과 한국조선해양(5억5,000만 달러·3척)의 수주물량까지 합치면 조선 3사의 러시아 수주물량은 80억5,000만 달러(9조7,000억원·33척)에 이른다. 현재 러시아 수주물량이 가장 많은 삼성중공업은 발주처와 대금 수령 시기를 두고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제재 길어지면 후폭풍 상당할 것"

업계는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 제재가 길어져 계약해지 사태가 잇따를 경우 후폭풍이 상당할 걸로 예상한다.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러시아 선박은 LNG 쇄빙선과 LNG 환적설비(FSU) 등으로 모두 북극권에서 진행되는 러시아 LNG 개발사업을 위한 맞춤형 선박이다.

일반 LNG 운반선은 최근 인기지만, 특수 기능을 갖춘 쇄빙 LNG선이나 FSU는 가격도 더 비싸 사실상 다른 선사에 팔기 쉽지 않다. 계약해지로 남은 LNG선은 악성재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조선사가 계약해지를 통보해도 끝이 아니다. 러시아 선사가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라며 계약해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약금 반환 소송을 걸 수도 있다. 그간 받은 돈보다 투입된 비용이 더 많으면 추후 손실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통상 조선사는 계약(20%)-중도금(30%·3회)-잔금(50%·인도 시점) 등 5회에 걸쳐 대금을 받는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설계 단계인 선박들은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선사 주문을 받으면 되지만 이미 상당수 선박은 건조가 상당히 진행돼 공사를 바로 중단하기도 쉽지 않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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