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횡령·코인폭락, 피해 커지는데...당국은 '수수방관에 속수무책'

입력
2022.05.23 04:30
내부통제 강화했지만 횡령 사고 여전히 빈번
정비 못한 코인 시장 규율, 루나 사태에 부메랑
"금융당국, 사태 수습하며 더 적극적이어야"

최근 금융소비자를 불안에 떨게 만든 600억 원대의 우리은행 횡령, 가상화폐 루나의 폭락을 두고 금융당국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사실 금융사 횡령과 가상화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그동안 금융당국이 수수방관해 이런 사태가 재발하고 조기진화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 가상화폐 시장 규율 등 금융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횡령 못 잡고 코인 폭락에도 입 잠근 당국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우리은행 횡령 사건과 루나 폭락 사태에서 금융당국의 시장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선 금융사 검사를 맡는 금융감독원은 2012년부터 10년 가까이 감춰졌던 우리은행 횡령 사고를 적발하지 못했다. 또 금융위원회는 불과 일주일 만에 루나 가치가 10만 원에서 0.1원으로 추락할 때 가상화폐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두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사태가 발생한 후에도 금융당국의 역할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사실은행 횡령, 가상화폐 가치 급변은 여러 차례 반복됐던 사안인 만큼 제도상 빈틈을 보완했더라면 이번 사고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

우리은행 횡령 사건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부실한 내부통제다. 금융당국은 2018년 사모펀드 사태를 계기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준법감시인 등이 내부통제를 더 엄격히 하도록 했는데, 우리은행 횡령 사건을 조기 발견하는 데 별 소용이 없었다. 은행권에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만 했지, 실제 얼마나 이뤄졌는지 또 잘 작동하는지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금융 사고를 보면 은행권 내부통제가 얼마나 허술한지 잘 알 수 있다. 금감원 집계 결과 지난해 횡령·배임·사기 등 전체 금융권 사고액 179억5,000만 원 중 은행 사고액만 전체의 90%에 달한다. 은행권에선 직원·부서 간 견제를 통한 금융 사고 방지 체계가 존재하지만, 잘 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터졌다고 본다.

제도 보완 기회, 수차례 있었지만 날려

가상화폐 역시 2018년과 지난해 초 불었던 급등 국면에서 시장 규율을 확립할 기회를 놓쳤다. 불공정 행위 등 가상화폐 시장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컸지만 바뀐 건 사실상 없었다.

당장 루나에 대한 상장폐지가 코인 거래소마다 제각각이라 혼란을 키우고 있는데, 관련 기준을 갖췄더라면 이런 혼선은 줄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가상화폐를 규율하는 업권법이 국회에 다수 계류 중이나 논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전문가들은 두 사안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우선 횡령 등 금융 사고 예방을 위해 내부통제가 실제 가동하는 구조를 만들 것을 조언한다. 내부통제 담당 조직인 금융사 '감사위원회'가 CEO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감사하는 환경을 만드는 식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감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예산, 인사권을 보장받도록 금융당국 조치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규율은 업권법 부재로 업계에 강제하기 어려운 한계는 있지만, 최소한 금융당국의 구두 경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금융당국이 국회에서 공전 중인 가상화폐 업권법 제정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를 향해 비판의 강도가 커지자 금융당국과 국민의힘은 루나 사태 발생 2주일 만인 오는 24일 가상화폐 업계 간담회를 열기로 하는 등 늦장 대처를 하고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당국 지도부가 과거 코인 과열 때마다 구두 개입했던 것과 지금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며 "가상화폐 업계가 금융당국을 갈수록 종이호랑이로 보는 분위기인데 시장 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