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로 지친 마음 달래는 아빠의 글, 비혼 독자 마음도 돌려 [마음청소]

입력
2022.05.19 14:00
'아빠 육아' 뉴스레터 발간 '썬데이파더스클럽'
3개월 만에 구독자 1,000명 확보
매 회 4, 5편의 장문 피드백 돌아와

편집자주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육퇴'라는 말이 유행이다. 약 3년 전부터 자주 쓰이는 단어로, '육아 퇴근'의 준말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에서 가정보육을 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더욱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CTMS)는 "코로나19 이후 맞벌이 아빠의 주중 평균 자녀 돌봄 시간은 코로나19 이전보다 18.4%, 외벌이 아빠는 19.5%가 늘어났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얼마나 이 돌봄 노동이 고되길래 '퇴근'이라는 단어를 쓸까. 젖병 설거지, 기저귀 갈아주기, 아이들 등하원 챙기기 등 끝없이 반복되는 육아 일상을 지내다 보면 활동의 폭이 줄어들기 마련. 이런 상황에서 돌봄의 주체인 '나'를 챙기기 위해, 나아가 서로 연대하기 위해 '글쓰기'를 택한 아빠들이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구독자에게 자신의 육아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보내는 '썬데이파더스클럽' 얘기다. 5명의 아빠가 돌아가면서 자신의 글을 기록하고 구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중 가장 먼저 뉴스레터를 기획하고 필자들을 섭외한 강혁진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 대표와 15일 서면으로 만났다.

글쓰기를 통해 만들어간 '아빠들의 커뮤니티'

강 대표는 '맘카페'와 같은 '아빠들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썬데이파더스클럽을 만들었다. 2월 6일 첫 편지를 보낸 후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벌써 구독자가 1,000명을 돌파했다.

처음 육아 뉴스레터를 기획했을 때만 해도 주변 반응은 시큰둥했다. 유명 작가인 친구는 "누가 그걸 읽겠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강 대표는 원래 대기업에서 마케터로 일을 하다가 프리랜서 기획자로서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을 만들었다. '인간 강혁진'이라는 개인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글쓰기는 '내면의 나에게 더 집중하게 하는 도구'다. 그는 "삶의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감정과 생각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필수"라면서 "그 과정에서 아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의 치유와 정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셈이다.

"출산과 육아 그 살벌한 전장에 기꺼이 참여하고파" 피드백도

그 마음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서일까. 뉴스레터 피드백은 언제나 장문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매 회 약 4, 5개의 피드백이 온다. 절반 정도가 아빠들의 피드백이다. 썬데이파더스클럽은 매 회 편지에 구독자들의 피드백을 싣기도 한다.

100일을 달려가는 남자아이를 둔 엄마는 이런 피드백을 보냈다. "아빠의 그 투박하고 어설픈 다독임이 아기에게 안정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육아일기를 늦게나마 써보려고 해요. 출산 후 글 소화 능력이 저하됐는데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20대 미혼 여성 김현아씨는 이렇게 피드백을 보내기도 했다.

"주변 언니들을 통해 '엄마'로서 겪는 고충과 희생 등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썬데이파더스클럽' 덕분인지 아빠의 입을 통한 육아 얘기가 제법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조금의 어색함이 더 유쾌하기까지 한 것 같고요. 자라나는 아이의 '순간 캡처' 같은 장면이 아닌, 일련의 모든 과정과 시간을 함께 기록하고 나눌 수 있는 아빠와 함께라면, 출산과 육아 그 살벌한 전장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네요."
독자 피드백 중 일부 발췌

"글쓰기처럼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습관 찾아가길"

물론 글쓰기라는 행위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강 대표는 '맥시멀리스트(많이 갖고 많이 누리길 추구하는 삶)'에 가까웠던 자신의 삶을 가지치기했다고 한다. 그는 "육아를 하다 보면 시간은 한정돼 있다는 걸 느낀다"며 "내 시간을 일, 육아 그리고 글쓰기, 딱 이것에만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9개월이 됐는데 그간 가졌던 저녁 약속 횟수가 한 손에 꼽힐 정도"라면서 "뭔가 하나를 얻어야 한다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일과 병행하는 육아에 지친 모든 부모에게 '나'라는 중심축을 잘 잡는 팁도 전했다. 그는 "더 나은 육아 방법을 얻는 건 필요하나 각자의 상황은 모두 다른 법"이라며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마다 선천적 성향과 발육 상태가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부모라는 정체성 이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을 수 있는 일을 하루에 30분이라도 매일 해 나가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강 대표에게 글쓰기가 그랬던 것처럼, 스트레칭이나 산책, 독서 등 육아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습관을 짧게라도 꾸준히 이어가라는 것이다.



손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