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된 약속은 희망이 아니라 기망이다

입력
2022.05.17 19:00
25면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피고인은 합의로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나, 수사기관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되고 신뢰가 간다. 피고인은 유죄.

흔히 보는 성범죄 판결문의 내용이다. 재판을 오래 했다고 하면 사람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단박에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진술의 진위는 장담할 수 없다. 진술자 본인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기억은 불명료하고 언어는 불완전해서 사건을 정확히 재현할 수 없다. 생활의 달인처럼 심리의 달인이 되어 진위를 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아무리 재판을 해도 그런 경지는 언감생심이다. 물론 경험이 쌓일수록 나름의 감이 생기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작업은 피자 박스 접기나 요리와 달리 요령이나 레시피로 설명하기에 변수가 너무 많다. 오히려 사람에 관한 판단에서는 경험칙이라는 틀로 일반화하고 싶은 욕망을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 '전력을 다해 의심한다.' 이게 판사의 직업윤리다.

판사는 도대체 어떻게 사람의 말만 가지고 유죄라고 인정할까.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결정된다. 진술의 내적 요소로서, △합리성(논리칙과 경험칙에 부합하는 것) △객관적 상당성(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는 것) △일관성(주요 부분이 유지되는 것) △구체성(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 포함되는 것)이 있고, 외적 요소로서 진술의 동기나 이유, 진술에 이르게 된 경위, 이해관계의 유무, 증언의 태도나 뉘앙스 등이 있다.

판사는 모든 요소를 신중히 들여다본다. 그중에서도 일관성과 구체성이 특히 중요하다. 피해자는 최소 두 번 이상 진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관성은 이 과정에서 진술이 오락가락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혼돈이 생기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진술이 항상 굳건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판단이 애매할 때 판사의 심증을 결정하는 핵심요소가 진술의 구체성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독특한 내용이 담겨 있으면 마음이 움직인다. 기록과 법정의 증거조사만으로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 현장검증을 나가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장은 머릿속보다 언제나 심오하다. 현장에 가면 답이 잘 보이는 이유는 현장의 유니크하고 디테일한 면 때문이다.

구체성은 재판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에서 아비(장국영)는 매표원인 수리진(장만옥)을 찾아가 시계를 같이 보자고 제안한다. 수리진과 아비는 1분 동안 시계를 바라본다. 아비가 말한다.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 당신과 난 여기 있고 이 순간을 기억하겠군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죠.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으니." 수리진이 독백한다. "그가 그 순간을 기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정말 그를 잊지 못했다."

인생은 모호한 십 년이 아니라 강렬한 1분이 결정한다. 삶을 추동하는 건 언제나 구체적인 사건들이다. 매 순간 겪어나가는 삶은 추상적일 수 없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죽음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이지 않은 것은 실은 죽은 것이다. 초침의 칸칸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한 그 1분처럼, 사랑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행동과 맥락이 갖춰져야만 사랑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사랑만이 아니다. 이념도, 정치도 구현돼야 한다. 차별금지법이나 장애인 이동권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법과 실현되지 않는 권리와 정책은 상실감만 안겨줄 뿐이다. 유보된 약속은 유예된 희망이 아니다. 그저 기망이다.



박주영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