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들의 피켓 시위나 항의는 볼 수 없었다. 지난 2017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 때 인사실패를 지적하는 피켓이 야당 의석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것과 대조적이다.
윤 대통령의 내각 인선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 간의 첨예한 대치 상황을 감안하면 의외가 아닐 수 없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열세에 놓인 더불어민주당으로써는 신임 대통령에 대한 피케팅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ㆍ소상공인 보상 추진에 일단 보조를 맞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을 마친 뒤 기립박수를 보내는 여야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국회를 떠났다.
2008년 이후 야당은 시정연설 때마다 대통령의 정책이나 통치 행위에 반대하는 피켓, 배너 등을 들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지난 2017년 6월 12일 취임 34일 만에 첫 시정연설을 한 문 대통령은 ‘일자리’라는 단어를 44번이나 언급하며 야 3당이 반대하는 ‘일자리 추경안’의 조속한 통과를 호소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본회의장 의석 단말기 모니터에 '인사실패 협치포기 문재인 정부 각성하라' '야당무시 일방통행 인사참사 사과하라' 등 문 정부의 내각 인선에 반대하는 피켓팅을 감행했다.
야당의 피켓팅은 20대 대선을 앞둔 지난 해 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시정연설 때 극에 달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시정연설을 마친 뒤 대장동 게이트 특검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피켓을 뒤로한 채 인사도 생략하고 국회의사당을 떠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9개월 여 만인 2013년 11월 18일 첫 시정연설을 했다. 정당 해산 절차와 관련한 재판이 진행 중이던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은 이에 항의하는 피켓팅을 벌였다.
대통령 시정연설이 있는 날 야당 의원들만 국회에서 피케팅을 한 건 아니다. 2014년 10월 29일 세월호 유가족과 관련단체는 국회 본청 앞에서 특별법 제정과 진실 규명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시정연설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대답 없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시위 행렬을 앞을 지나 청와대로 향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뤄진 야당 의원들의 의사표현은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벌인 배너 시위가 원조다. 2008년 10월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 당시 민노당 의원들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에 의거한 대기업 우선 정책에 반대하며 배너시위를 벌였다. 그 후 야당 의원들의 피켓팅은 정권교체와 상관 없이 계속 반복돼 왔다.
대통령 시정연설 때 야당 의원의 집단 피켓팅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의회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에서 의원의 의사 표시는 피케팅이 아니라 발언과 문서 제출 혹은 자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날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사라진 피켓이 언제 다시 등장할 지 알 수 없으나, 국민들은 당리당략에 우선한 피켓보다는 정의로운 법,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