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넷플릭스에서 ‘나의 첫 심부름’이라는 방송을 봤다. 제목 그대로 첫 심부름을 떠나는 2~6세 아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본의 장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여정은 쉽지 않다. 길을 잃기도 하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노는 데 정신이 팔리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도움과 응원에 힘입어 아이들은 ‘첫 심부름’을 결국 해낸다. (물론 이 과정은 행인으로 위장한 제작진과 미리 협조를 요청 받은 주민들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부모님은 ‘할 수 있다’는 부적을 만들어 주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며 아이의 도전을 응원한다. 아마 우리 다 그렇게 자랐을 것이다.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어서 떠올리지 못하는 수많은 ‘첫 경험’ 뒤에는 부모님의 무한한 지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내가 부모님보다 아는 것이 많다 과시한다. 심지어는 ‘왜 이런 것도 못하냐’며 타박하기도 한다.
자음과모음 봄호에 실린 김유나의 단편소설 ‘너 하는 그 일’의 태은 역시 그렇다. 세무사 시험을 준비중인 태은은 최근 2차 시험을 끝내고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매달 60만 원씩 엄마가 생활비를 보내주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대전에 사는 엄마가 태은의 자취방을 예고 없이 찾아온다. 죽은 아빠의 천도재를 지냈다는 사실을 같이 사는 아저씨에게 들켜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태은의 자취방에 머물던 엄마는 ‘너 하는 그 일’을 자신도 하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태은은 “엄마 절대 못 해. 힘들어”라며 말리지만 엄마는 “너보다 잘할 거다”고 자신한다. 처음의 자신감과 달리 엄마는 물류센터의 낯선 일 앞에서 헤매고 그때마다 태은을 찾는다.
물류센터 일뿐만 아니다. 태은에게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폭력적인 아빠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던 것도, 그러고도 다시 남자와 살림을 차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엄마의 뒤치다꺼리는 전부 태은의 몫이다. 아빠가 죽고 난 뒤 엄마를 위로하고, 주말마다 목욕탕에 끌고 가고, 엄마가 취득할 만한 자격증을 알아보는 것도 모두 태은의 역할이었다. “좀 진정해 엄마”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들으면 안 돼, 엄마.” “그냥 빨리 하면 돼, 엄마.” 소설에서는 엄마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태은의 목소리가 내내 메아리친다.
하지만 태은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엄마 진짜 속없다”고 타박하는 태은에게 엄마는 나지막하게 대꾸한다. “너도 계속하잖아.” 이어지는 엄마의 말. “매달 60씩 7년 8개월. 나 그거 여지껏 한마디도 안 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생색내지 않았던 것뿐이다. 태은이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것도, 7년째 엄마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도. 자신만 엄마를 참아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엄마도 나를 참아주고 있었다는 걸 태은만 몰랐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식은 마지막까지 부모의 부모가 될 수 없다. 그들이 말하지 않으면 끝까지 모를 테니까. 그들도 우리를 참아주고 있다는 걸.
얼마 전 어버이날 선물로 갖고 싶은 것 없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나도 네 어린이날 선물 못 챙겨줬으니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옛날 같으면 어린이를 낳고도 남았을 나이에 무슨 어린이날 선물이냐”며 웃고 말았는데, 어쩌면 부모님께 나는 언제까지고 챙겨줘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린이날 선물 받아둘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