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문 대필과 과제 대행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해외대학 진학을 노리고 내신(GPA)과 '스펙' 관리를 해야 하는 학생들은 돈을 내고 첨삭과 컨설팅을 받는 것을 '기본 중의 기본'으로 여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비정상적인 사교육이 판치고 있지만, 해외 유명대학 입학에 눈이 먼 학부모와 학원들은 '진학이 우선' '안 걸리면 그만'이란 태도를 보이고 있다.
13일 찾은 제주 국제학교 인근 학원단지에는 'College consulting' 'Essay writing' 전문 학원이 유독 많았다. 강남에 자리 잡은 학원과 연계된 곳도 많아 압구정동 '분원 캠퍼스'와 다름없었다. 실제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강남에, 금요일부터 일요일에는 제주에 머무는 강사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에세이 컨설턴트는 논문 대필에 대해 "editing(첨삭)과 대필은 한 끗 차이"라며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정성 한두 스푼이 더 들어가는 차이"라고 말했다. 국제학교 학생들이 학교에 제출하는 영작 과제물은 대개 학원 교사들의 첨삭을 받는데, 이 과정에서 대필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학생이 작성한 초고의 3분의 2 이상을 새로 써 주는 경우가 허다하고, 한국어로 작성된 요약본을 보고 학원 강사가 영어로 에세이를 만들어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 컨설턴트는 "오늘 처음 만나서 그렇지, 신뢰가 쌓이면 첨삭에 더 신경을 써 주게 되지 않겠냐"며 "그럼 튜터의 글이 학생 글이 되고 학생 글이 튜터의 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원은 동남아시아 출신 튜터가 아닌, 미국 유명대학 출신의 검증된 한국인 튜터가 첨삭해준다는 점도 여러 번 강조했다.
제주 국제학교 근처 학원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논문 대필 컨설팅과 과제 대행 튜터를 기자에게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학부모는 "요새 제주에서 인기가 많은 튜터인데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며 "한 시간에 15만~18만 원 주면 과제를 모두 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 아이가 하이(고등학교) 가면 받아 볼까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논문 대필은 빈번히 이뤄지고 있는 듯했다. 학부모가 추천해준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아 보니 △논문 대필에는 15일 정도가 걸리며 △원하는 주제와 한국어로 대략적인 요약본(summary)을 보내주면 전공 원어민 튜터를 연결해주고 △원하는 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는 레벨로 만들어준다고 자랑했다.
특히 고교생 신분으로 논문 1저자가 되는 일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이 썼다는 논문처럼) 머신러닝 관련 주제로 IEEE(국제전기전자공학회) 소속 콘퍼런스에 낼 수 있는 논문도 대필이 가능하다고 했다. 글 수준에 따라 비용은 달라지지만, 보통 A4용지 한 장에 50~100달러 수준이었다. 이 컨설턴트는 "원하는 내용을 보내주면 계획해보겠다"며 "명문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들이 표절 위험 없이 써 드린다"고 안심시켰다.
학원과 컨설턴트들은 돈으로 스펙을 사서라도 해외 명문대학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일부 국제학교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파고들고 있었다. 제주에서 해외 입시 컨설턴트 학원을 운영 중인 한 원장은 "일부 '교육 컨설턴트'는 '교육'을 잊은 채 학생과 학부모를 돈벌이 대상으로만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내가 상담한 학생도 부모가 말도 안 되는 논문을 학생 이름으로 써 왔길래, 오히려 자기소개서에서 빼라고 조언했는데, 부모가 '대입이 먼저 아니냐'고 고집을 부려 놀랐다"고 전했다.
비정상적인 사교육이 횡행하는 이면에는 '신뢰'를 토대로 한 해외대학 입시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하고 있다. 매년 수십 개 국가 학생들이 지원하는 미국 대학에선 스펙의 진위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 미국으로 입학사정관제 연수를 다녀왔던 전직 자사고 교사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사회에선 기본적으로 학생이 제출하는 성과물이 제3자의 노력이나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에선 이를 명확한 범죄로 규정하기 때문에 대필 등을 통해 지원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