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관객과 만나는 공연은 오랜만이라 긴장했네요."
5월의 타오르는 햇빛 아래, 대학 캠퍼스를 향하는 사람들에게서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1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멈췄던 대학 축제의 첫 막을 연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를 찾았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밴드 동아리 '헤게모니'의 베이시스트 A씨(17학번·경영학과)는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을 보니 싱숭생숭하다"고 했다.
밴드 공연을 즐기는 관람객들은 헤게모니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흔드는가 하면 밴드 이니셜을 나타내는 'H' 모양의 손동작을 하며 방방 뛰었다. 그들의 뒤로 '뛰어라 세상을 흔들 때까지'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럭였다. 보컬이 관객을 향해 마이크를 내밀자 떼창도 했다. 그동안 함성을 금지하는 방역지침 때문에 박수 소리만 들리던 공연장과는 다른 광경이다.
금잔디 광장에선 흥을 돋우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대동제 오려고 추가 학기 신청했다", "3년 만의 축제에 신이 나버린 할미" 등 학생들은 재치 있는 글귀로 기대감을 보여줬다. 친구와 추억을 남기기 위해 포토 부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줄은 광장 한 면을 둘러쌀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조선시대 유생들의 의복인 단령을 입고 초대형 미끄럼틀을 타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단령을 빌리는 부스에도 학생들이 넘쳤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마스크를 벗고 잔디밭을 거니는 사람들도 꽤 볼 수 있었다. 모처럼 열린 큰 규모의 축제에 가족과 함께 즐기러 오기도 했다. 대학원생 B씨는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축제를 찾았다. 그는 "다들 마스크를 잘 쓰고 있기도 하고 안내 요원들이 수시로 마스크를 착용하라며 안내해 줘서 (방역이)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활기를 찾은 캠퍼스를 보니 너무 좋다"는 그는 "교수님이 오늘 같은 날 강의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셨다"고 웃으며 말했다.
성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축제가 그리웠던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기도 했다. 한국항공대에 재학 중인 21학번 C씨는 축제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발걸음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학 생활에 많은 제약이 있었던 일명 '코로나 학번'인 그는 대학 축제 자체가 처음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신기하다"는 그는 "우리 학교도 얼른 축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대 인사캠 부총학생회장 권희성(19학번·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씨는 "인근 경찰서 관계자들도 대학생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의 축제가 될 것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학생들이 좋아하는 메뉴의 푸드트럭이 자리했고, 삼삼오오 모여 맥주 캔을 부딪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배달 제휴 안내문도 눈에 띄었다. 성균관대 캠퍼스 근처의 식당가와 손잡고 평소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 비대면 기간 동안 경영난을 호소했던 인근 상가 주민들과 상생하려는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황모씨는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며 "대동제를 하니까 학생들이 돌아온 게 실감이 난다"고 했다. 이어 "축제 한다고 하루에 성대에서만 주문이 스무 건 이상 증가해 매출이 30% 늘었다"고 기뻐하면서 "가게에도,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휴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 주 먼저 3일 동안 축제를 한 경기 수원시 성대 자연과학캠퍼스 주변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일본식 라면 가게 사장 D씨는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 개업했는데 축제 날 최고 매출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양꼬치 가게 사장 E씨는 "준비한 재료가 떨어져 가게 문을 일찍 닫기까지 했다"며 "어디서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는지 골목이 꽉 찼다"고 했다. 감자탕집 사장 F씨는 "코로나 전이었던 3년 전 축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그동안 (대면) 축제가 하나도 없다가 오랜만에 열리면서 서울에서도 사람들이 오고 동네 주민들도 많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학교가 비대면으로 운영되면서 발길이 끊겼던 것은 인근 상점뿐만이 아니었다. 소속감과 연대 의식이 사라진 캠퍼스에는 학생 자치의 맥이 끊겼다. 성대 인사캠 총학생회장 장필규(17학번·영상학과)씨는 "지난 2년 동안 총학생회에서 대면 축제를 준비할 일이 없다 보니 인수인계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부총학생회장 권씨는 "2017, 2018학년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게시글까지 찾아가며 자료를 모아야 했다"고 말했다.
인사캠보다 한 주 앞서 축제를 진행한 성대 자과캠 총학생회장 최유선(17학번·기계공학부)씨는 축제 경험이 있는 학번과 없는 학번과의 생각 차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학번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아 축제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조차 없더라"며 "SNS를 통해 (코로나 학번에게) 질문을 계속 받았는데 처음 겪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준비 과정에서도 이전 축제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 역시 쉽지 않았다. 성대 공식 응원단 '킹고응원단'의 단장 정지민(20학번)씨는 "응원단 특성상 관중과 소통하는 노하우가 가장 중요한데 2년 동안 대면 행사를 하지 못한 데다 단원 모두가 코로나 학번이라 준비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낯선 한국을 찾은 유학생이나 교환학생들 역시 어려움이 많았다. 유학생 야시장에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준비해 온 조안(21학번)씨는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는데 계속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돼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웠고 외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축제를 계기로 유학생끼리도 연결고리가 생기고 한국인 친구들도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져줘서 즐겁다"고 말했다.
이전 축제와 다르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축제를 준비하는 두 달 동안 방역 지침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부총학생회장 권씨는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준비했다"며 "5월이 되면서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고 수용 인원이나 행사 장소 등을 바꾸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안내 위원들은 행사장 곳곳에서 참가자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했고 캠퍼스 곳곳에 '마스크를 꼭 착용해 달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50인 이상 규모의 집회나 공연은 실외에서도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방역 지침이 완화된 덕에 축제장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 듯 북적였다. 최씨는 "(자과캠 축제에) 역대 최대 인원이 모였다"며 "1만 명 이상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네 주민들까지 모여들면서, 순찰을 강화하고 학내에 경찰을 배치하는 등 수원 중부경찰서의 협조도 받았다.
학교 측에서도 힘을 보탰다. 축제가 진행되는 11~13일 교내 편의점 한 곳을 지정해 주류 판매를 허가한 것.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서 대학 내 주류 판매와 음주가 금지됐지만 축제 기간 동안 특별히 허락했다. 일부 교수진은 강의를 휴강하면서 학생들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졸업하기 전에 옛 축제를 다시 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 고학번들도, 대학 축제를 구경조차 못한 코로나 학번들도 대면 축제를 기다려왔다. 총학생회장 장씨는 "다들 기대감이 크다 보니 어떻게 만족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며 "졸업생들도 올 수 있냐고 문의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참여도도 비대면 행사와 비교해 월등하게 높다. 권씨는 "부스 운영하는 분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놀라더라"며 "예전에는 줄까지 서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축제가 열리다 보니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최씨는 "예전에는 (축제가) 연예인을 보기 위한 장이었다면 이제는 코로나로 억눌렸던 열기가 폭발하면서 축제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밝혔다.
킹고응원단은 3월부터 준비한 공연을 관객 앞에서 처음 선보였다. 응원단장 정씨는 "그동안 코로나로 공연을 못 해서 힘들었다"며 "이런 무대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으로 공연을 진행하거나 함성을 지르지 못하는 소규모 공연장에서만 무대를 꾸며왔던 것. 그는 "모든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따라 불러주더라"며 "관객들의 호응이 우리의 무대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응원부장 진자영(21학번)씨는 "끝이 안 보이도록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며 "'이 맛에 응원단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꿈꾸는 것 같아요.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축제를 못 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즐기게 되다니 실감이 안 나네요."
장씨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것도, 많은 인원이 한 공간에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축제를 준비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번 축제가 끝나고 모든 학생이 '대학생활은 이런 것이었구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성대를 시작으로 다른 대학들도 코로나19 이후 첫 대면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SNS에서는 기대에 부푼 학생들이 "놀이공원도 못 갔던 한을 풀자(경희대 재학생)", "드디어 대면 축제가 열린다니, 2년을 기다렸다(중앙대 재학생)", "인원 제한 없다니까 친구들 모아서 다 같이 가자(계명대 재학생)"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