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이라는 말이 있다. 봉급, 급여라는 뜻의 ‘샐러리(salary)’와 사람을 뜻하는 ‘맨(man)’이 결합해 회사원이나 월급쟁이를 의미하는 말이다. 영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영어에는 이런 단어가 없다. 화이트칼라의 사무직 노동자를 뜻하는 ‘오피스 워커(office worker)’라는 표현이 그나마 비슷하지만, 이 역시 실제로는 영미권에서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사실 샐러리맨은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영어 표현이다. 일본어로는 ‘사라리만 (サラリーマン)’이라고 발음하는데, 이 말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샐러리맨이 되었다.
일본에서 온 말이니까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법조문 등에서 무분별하게 쓰이는 일본어 표현을 자제하거나 ‘순화’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샐러리맨이 일본식 영어라는 것을 아는 이가 드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랑받는 말이다. 일본 식민주의 시절에 수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뒤 홀로서기에 성공해 한 세기 동안 이질감 없이 쓰여졌다. 그 말의 끈질긴 생명력을 인정할 만한 것이다. 일본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말까지 배척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화무쌍한 언어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문화적 기호라는 측면에서도, 한국의 ‘샐러리맨’과 일본의 ‘사라리만’은 다르다. 이 칼럼에서는 일본의 ‘사라리만’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단, 우리나라 독자들이 알기 쉽도록 일본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라리만’이 아니라 ‘샐러리맨’이라고 표기하겠다.
일본에서 샐러리맨이라는 말이 탄생한 것은, 20세기 초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되던 시기였다. 이때에 도쿄, 오사카 등 도회지를 중심으로 공무원, 회사원, 교사 등 봉급 생활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총칭하는 샐러리맨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1919년 일본의 신문에 ‘샐러리맨 동맹’이라는 묘한 이름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는 뉴스가 실리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봉급생활자들이 단결해서 화이트칼라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 보장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즉, 당시에는 샐러리맨이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근대적인 교육을 받은 지식 엘리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나 회사 등에 고용된 무산 계급(노동자)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녔다. 지금처럼 순수하게 회사나 조직에 고용된 ‘회사원’을 뜻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후 시사 만화 등의 단골 소재가 되면서 샐러리맨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자리 잡았고, 계급적인 뉘앙스도 점차 옅어졌다.
샐러리맨이 ‘노동자’ 대신 ‘일꾼’의 이미지를 획득하는 것은 2차대전 패전 이후 1960~1970년대 고도 경제 성장기의 일이었다. 이 시기는 대기업이 종신 고용과 연공 서열, 업무 이외의 측면에서도 끈끈한 스킨십을 중시하는 이른바 ‘가족 경영’을 내세웠던 때다. 샐러리맨은 이 대기업 ‘가족’의 일원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일본 사회의 경제적 부흥을 이끌어 낸 주역이었다. 기업 측도 직원의 고용 안정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주거비나 교육비 지원 등 푸짐한 사내 복지 제도를 제공했다. 샐러리맨은 경제대국 일본을 건설한 성실하고 근면한 ‘일꾼’이자 화려한 소비 문화의 주역으로 찬사를 받았다. 다만, 그들의 헌신적인 퍼포먼스의 뒷면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장시간 노동이나 시간 외 잔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퇴근 이후나 주말 등 사적인 시간도 부서의 회식이나 사교 모임 등으로 채우는 등 회사일에 ‘올인’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조직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집단주의, 손윗사람의 말을 거스르기 어려운 수직적인 문화가 이런 분위기를 거들었다. 종업원의 일사불란하고 순종적인 근무 태도를 중시하는 일본의 기업 문화가 이때에 형성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 ‘버블 붕괴’가 본격화되면서 샐러리맨의 삶은 눈에 띄게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기업은 종신 고용 제도를 폐지하고, 사내 복지 혜택도 줄였다. 하지만 당장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떠안은 샐러리맨에게 헌신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회사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잔업에 시달리고, 퇴근 이후에는 상사,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스트레스를 발산한다. 회사일에만 몰두하다가 가정에 소홀해지기 일쑤다. 모처럼 제시간에 퇴근하는 날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편치 않아서 괜스레 밤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나날이 악화되는 근무 환경 속에서 과로사도 급증했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 샐러리맨은 존경이나 감탄보다는 애환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회사일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샐러리맨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 ‘가축이 아니라 사축(社畜, 회사가 키우는 가축과 비슷한 처지라는 의미에서 등장한 신조어)’이라는 신랄한 풍자가 튀어나올 정도다. 한편, 창업을 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홀로서기에 나서는 등 회사를 그만두고 원하는 일을 찾아나서는 새로운 풍조가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샐러리맨을 탈출한다’는 뜻의 ‘다츠사라 (脱サラ)’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성실한 멋쟁이’였던 샐러리맨의 이미지가 반 세기 만에 ‘회사에 길들여진 노예’로 형편없이 추락한 것이다.
일본 유수의 기업에 입사해 10년이 넘게 일해 온 한 일본인 친구는 심각하게 ‘탈샐러리맨’을 고려하고 있다. 전문성이 높은 직종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지만, 상사로부터 “퇴근 이후에도 업무 관련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타박을 자주 듣는다. 업무 전문성에 못지않게 사적인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그녀는 회사일과 육아에 쫓기는 빡빡한 시간을 쪼개어 취미 활동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는 업무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직 분위기가 견디기 어렵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지만, 계속 회사에 다니는 것이 과연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 고민이 크다고 한다.
일본에는 집단주의적인 기업 문화가 여전히 건재하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신입 사원은 검은색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드레스 코드가 있다. 특히 취업 면접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검은색 정장을 입는 것이 불문율이다. 아예 넥타이나 구두까지도 단색의 수수한 검은색으로 ‘깔맞춤’한 정장 세트가 ‘취업 수트’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한다. 일사불란함을 강요하는 일본 기업의 분위기가 싫어서 해외 취업을 원한다는 대학생을 만난 적도 있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젊은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집단주의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행태가 여전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도성장기를 이끌었던 ‘열혈 샐러리맨’의 이상적인 모습을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서 샐러리맨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한 것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완고한 기업 문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취업은 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간절하게 ‘탈샐러리맨’을 원하는 일본 젊은이들.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한국의 젊은이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일본보다는 비교적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정보 기술이나 글로벌 정세 등에 재빠르게 대처하는 것과, 조직의 문화적 체질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다. 특히 일단 한번 정착된 관습이나 생활 문화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아직도 기성 세대 중에는 회사일을 위해서 사적인 삶의 풍요로움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직된 직장 분위기 때문에 젊은 회사원들이 환멸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샐러리맨은 고달픈 신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