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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월드컵공원 내 반려견 운동장에 비글 삼총사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개들은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가 하면 다른 개들과 뛰어놀기 바빴다.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비글미'를 뽐낸 반려견 세 마리 보호자는 이시형(50)씨. 비글 세 마리 입양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지만 입양 과정에도 각각 사연이 있다. 두 마리는 실험견 출신, 한 마리는 유기견 출신이다. 이씨는 어쩌다 '비글 아빠'가 됐을까.
이씨가 처음 실험견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건 2017년 여름. 동물보호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동행)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실험견 출신 '보라'(당시 3세)의 입양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발견했다. 보라는 2년간 실험에 동원되다 동행에 기증된 9마리 실험견 가운데 한 마리다. 이씨는 "사람을 위해 본능을 억제하고 살아야 했던 보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며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주자는 생각에 입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보라의 뚜렷한 눈매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속 주인공 배우 조니 뎁의 아이라인을 닮았다는 점에 착안해 이름을 '조니'로 지었다. 조니와의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씨는 개의치 않았다. 조니는 2년간 실험실 케이지 안에서 밥을 먹고 배변을 한 습관으로 배변을 가리지 못했다. 또 산책을 나가면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도 무서워 후다닥 뛰거나 아예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이씨가 업무로 집을 비울 때면 끝없이 짖는 분리불안 증세도 있었다.
이씨는 조니를 포기하는 대신 차근차근 교육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씨는 "조니는 햇빛도 소음도 없는 곳에서 2년 넘게 살았다"며 "배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소음에 예민한 건 당연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으로 치면 30세 정도가 돼서야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 아니냐"며 "배움이 다소 느렸지만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자 조금씩 저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눈빛과 행동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조니 입양을 계기로 실험견에 전반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동행이 2015년 구조한 실험견 '소백이'(12세)가 입양을 갔다가 파양을 당하고 해외 입양을 위해 실험견 전문 동물보호단체인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소백이는 배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1년 만에 비구협 논산쉼터로 되돌아와야 했다. 해외 입양마저 좌절되면서 소백이는 쉼터에서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비대해졌다.
이씨는 먼저 소백이를 임시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짧은 기간이라도 집밥을 먹여주고 싶어서였다. 집에 온 소백이는 넉살 좋게 첫날부터 자기 집인 것처럼 굴었다. 이씨는 "아무래도 여기저기 옮겨 다닌 경험이 있어 새 환경에 적응을 비교적 잘하는 것 같았다"며 "집에 오자마자 다이어트부터 시작했는데 잘 따라주었다"고 웃었다. 20㎏이 넘던 소백이의 몸무게는 식단 조절과 운동으로 10㎏대까지 줄었고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임시 보호 기간이 끝났지만 이미 9세가 돼 입양처를 찾기 어려울 것 같은 소백이를 입양하게 됐다.
소백이를 입양한 해인 2019년에는 복제견 '메이'가 6년간 검역 탐지견 생활을 마치고 농림축산검역본부로 돌아간 뒤 8개월간 실험에 동원되는 등 학대당하다 숨진 게 알려지며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씨는 메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리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조니, 소백이와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환경보호청은 2035년부터 동물실험을 완전히 금지한다고 한다"며 "해외에는 대체시험 지원도 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실험비글의 희생을 사람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대체시험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입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2017년 경북 문경시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려진 뒤 구조돼 비구협 논산쉼터에 왔지만 3년간 임시 보호 한번 나가지 못한 비글 '철수'(7세 추정)의 사연을 듣고 임시 보호를 자청했다.
철수는 쉼터에서는 말썽쟁이였지만 이씨 집에 와서는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배변을 완벽하게 가렸고 산책도 잘하는가 하면 터줏대감인 조니, 소백이와도 잘 지낸 것. 이씨는 "보호소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았다"며 "집에 오니 성격이 바뀌더라. 다시 보호소로 보낼 수 없어 입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활동적인 비글 세 마리와의 생활이 어렵진 않을까. 이씨는 다른 건 다 괜찮지만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고 꼽았다. 바로 산책이다. 세 마리를 한꺼번에 산책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한 마리씩 산책하면 남은 두 마리가 난리를 피운다. 이를 위해 산책을 도와주는 산책 도우미 서비스 이용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이씨는 예비 실험견, 유기견 입양자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