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독재권력에 맞서 '타는 목마름으로'와 '오적' 등 저항시를 남긴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치열했던 81년의 삶을 뒤로하고 11일 영면에 들었다.
그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9시 강원 원주시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시인의 두 아들인 김원보 작가와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판소리 명창 임진택 연극 연출가, 이청산 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사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엄마의 손을 잡은 8세 손자도 할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했다.
차남 김 이사장은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 해 주신 모든 분께 가족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의 유해는 이날 오전 화장된 뒤 2019년 별세한 부인 김영주씨가 잠든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서 영면에 들었다. 부인 김영주씨는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의 외동딸이기도 하다.
앞서 가족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빈소엔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손학규· 이재오·이창복 전 국회의원 등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어두운 시대 임에도 자신의 주장을 거침 없이 표현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10여년 전부터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한 김 시인은 8일 오후 4시쯤 81세를 일기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타계했다. 임종 당시 말도, 글도 남기지 않았으나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1941년 전남 목포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 등단했다. 1970년 당시 국가 권력을 풍자한 시 '오적'으로 구속되는 필화(筆禍)를 겪었다. 이후 1974년 용공조작 사건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는 등 독재에 저항한 문인으로 주목 받았다.
문화계는 떠난 고인을 기리는 행사를 준비한다. 김 시인의 후배 문화예술인과 생명운동가 등은 다음 달 25일 고인의 49재에 맞춰 서울에서 추모문화제인 '생명 평화 천지굿' 행사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