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한 교수·연구자 집단성명 발표에 동참한 지식공유연대 소속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한 후보자 딸의) 입시에 사용할 계획이 없다면 왜 굳이 '오픈액세스저널'을 표방하는 사이비 학술지에 상당한 초고료를 주고 (논문을 게재했는지) 설명이 잘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0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서 '외국 대학 입시용 스펙 쌓기'로 의심되는 한 후보자 딸의 논문 작성·게재 논란에 "문제가 되길래 'ABC 리서치(Research)'라는 수상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 세 편을 훑어봤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해명대로 5페이지 이하의, 논문이라고 하기 어렵더라"며 "고등학교 2학년이 입시에 사용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면 왜 그렇게 돈을 내고 학술지를 자처하는 사이비 학술지에 실었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해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스펙으로 사용하려 했던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재차 지적했다.
이어 "(한 후보자 측이) '전자자료로 올려놓으려 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는데, 자기 컴퓨터에 PDF 파일로 만들 수 있고 얼마든지 보관할 수 있다"며 "굳이 거기(학술지)에 올린 것은 (입시에) 사용할 계획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좀 더 상식적"이라고 쏘아붙였다.
김 교수는 '오픈액세스' 저널을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되는 사이트로 폄훼한 한 후보자 측의 해명도 비판했다.
'오픈액세스(open access)' 저널은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학술지로서, 전문가에 의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는 점은 여느 학술지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오픈액세스 저널은 대형 학술 출판사들이 연구 자료를 독점하고 연구자와 대학도서관 등에 높은 구독료를 강요하는 행태에 반발, 이런 폐해를 극복하려는 오픈액세스 운동의 한 결과물이다.
김 교수는 "실제로 해외나 국내에서 어떤 학술지나 출판사, 학술정보업체가 전자 저널을 독점해 비싼 구독료를 받는 경우가 많아, 가령 서울대 중앙도서관 같은 경우는 수십억 원의 구독료를 내고 있다"며 "그런 한계를 벗어나자는 게 오픈액세스 운동이고, 오픈액세스 저널"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픈액세스' 저널을 표방하는 학술지 중 "투고하면 다 공개해준다"면서 심사과정을 생략하거나 부실하게 심사하고, 굉장히 비싼 투고료를 받는 곳도 있다. 이런 경우 '부실 학술지'라고 하고, 또 많은 투고료를 챙겨가기 때문에 '약탈적 학술지'라는 말을 쓴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한 후보자의 해명은 지난 20년간 해외에서나 국내에서 이어져온 오픈액세스 운동에 대한 폄훼이자 모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후보자 딸이 논문을 올린 학술지도 사이비 학술지이고, 돈을 더 지불했을 가능성을 김 교수는 제기했다. 그는 "(해당 ABC Research) 학술지 온라인 홍보 영상을 보면 '아시안 비즈니스 컨소시엄이 후원하는, 여러 학문을 다루는 학술지'라고 소개한다"며 "논문을 투고하면 대기 시간이 제로, 즉 심사하지 않는다는 얘기고, 투고 비용은 미화 50달러라고 선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개 투고 결정을 통보하면서 온라인에 게재하고, 계속 올려놓으려면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게 약탈적 학술지, 사이비 학술지의 주된 특성"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8일 전국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인문학협동조합 등 교수·연구자 6개 단체는 '외국 대학 입시용 스펙 쌓기'로 의심되는 딸의 논문 작성·게재와 관련해 내놓은 한 후보자의 해명이 학문 생산과 '오픈액세스 운동'을 왜곡하는 궤변이라며 한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