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주상욱이 많은 부담감 속에서도 '태종 이방원'을 이끄는 주연의 역량을 발휘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작으로 쌓은 그의 경험과 관록이 첫 대하 사극에서도 빛을 발했다.
지난 10일 주상욱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HB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본지와 만나 KBS1 '태종 이방원'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시기, 누구보다 조선의 건국에 앞장섰던 리더 이방원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했다. 특히 궁궐 안에서는 차가운 철혈군주였고, 궁궐 밖의 백성에게는 온화한 군왕이었던 이방원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면서 정통 사극의 부활을 지폈다.
극중 주상욱은 인간 이방원을 재조명 시키며 호평을 받았다. 냉정했던 군주의 이면에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선택에 끊임없이 고뇌하는 캐릭터를 표현해냈고 그간 이방원을 다룬 타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태종 이방원'은 지난 2016년 방송된 KBS1 '장영실' 이후 5년 만의 정통 사극 드라마였기에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먼저 주상욱은 "여러 가지로 아쉽다. 할 얘기가 훨씬 더 많았지만 작품이 너무 짧게 끝났다. 5년 만 KBS 대하 사극이자 연기자로써 첫 대하사극이다. 아무래도 연령대가 있어서 이슈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초반 엄청난 반응이었다. 나 역시 기대 반 불안 반이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배우진 모두 제작진의 배려 덕분에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본방송을 챙겨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주상욱 역시 가족들의 응원 속에서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갖고 내내 방송을 지켜봤다. 다만 '태종 이방원' 방송 중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주상욱은 "사건을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주상욱은 '태종 이방원'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방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을 꾸준히 참고했다. 작품마다 고유의 색깔이 달랐다는 점을 착안한 주상욱과 김형일 감독은 '태종 이방원'을 정치드라마가 아닌 가족 이야기로 접근했다. 그는 "우리도 가족 드라마처럼 사람 냄새나는 이방원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방원이 카리스마 있고 냉철한 사람인 것을 떠나서 막내아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작품은 김영철이 태조 이성계 역을, 박진희가 이방원의 아내 원경왕후 민씨 역을, 예지원이 이성계의 아내 신덕왕후 강씨 역을 맡았다. 오랜만에 현장에서 선배가 아닌 후배 라인에 들었다는 주상욱은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라면도 끓여먹고 숙박도 했다. 촬영 반, 술 반이었다. 초반 분위기는 김영철 선배님이 잡았다. 많이 가르쳐주셨다. 저는 후배들과 선배들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제가 이끌었다고 할 순 없지만 재롱을 많이 떨었다.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고 떠올렸다.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어땠을까. 주상욱은 "인물의 서사를 다 보여줄 수 있어 큰 영광이다. 어떤 작품에서도 그럴 기회가 없다. KBS 대하사극에 캐스팅된 것은 영광이고 운이 좋았다. 50부작은 해야 더 안정적이고 재밌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 같았지만 연장이 안 됐다. 마지막에 조금 급하게 마무리했다"고 못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사극 매니아라는 주상욱은 "넷플릭스 사극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면서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주상욱은 "이방원의 젊은 시절부터 역사를 표현해야 했다. 이야기 초반, 젊었을 때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그려냈다면 왕이 된 이후까지 계산하고 연기를 해야 했다. 시청자들이 이방원의 변화한 모습을 이해하길 바라면서 버텼다"고 설명했다. 특히 노쇠한 이방원을 표현하기 위해 흰 수염 분장까지 해야 했다고 토로한 주상욱은 "하얀 수염을 붙이는 게 '개그콘서트' 분장 같았다. 그게 굉장히 큰 부담이었지만 괜찮게 나온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주상욱이 스스로 바라봤을 때 자신이 이방원에 발탁된 이유는 이중적인 이미지다. 그는 "사람이 얼굴을 보면 이미지가 있다.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여러 면이 보인다. 저는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얼굴이 있다더라. 하지만 제가 봤을 땐 선하게 생긴 것 같다"고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주상욱은 지난 1998년 KBS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연기를 시작했고 어느덧 데뷔 24주년을 맞이했다. 유독 드라마에서 실장, 팀장 등 사무직 역할을 많이 맡기도 했다. 이를 두고 주상욱은 잠시 한숨을 쉬면서 "지금 생각하면 실장님을 왜 그렇게 많이 맡았을까. 지금은 눈에 띄는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 시나리오를 볼 때 캐릭터를 중심으로 본다"면서 "과거엔 제작 환경이 달라서 한 해에 작품을 2개씩 했다. 매일 밤을 새웠다. 지나 보니까 그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작품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있다"고 토로했다.
늦게 데뷔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조급함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후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다작에 임했다. 자연스럽게 경험을 쌓고 좋은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면서 그때의 조급함은 사라졌단다. 당시를 떠올리던 주상욱은 "과거에는 작품을 하나라도 더 하려 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이젠 여유가 생겼다. 여러 주변 상황 덕분에 변했다. 단지 나이가 많아서, 혹은 결혼 등의 이유는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다양한 작품으로 대중에게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주상욱은 곧바로 차기작 tvN '환혼'으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꾸준히 다작 행보를 보였지만 흥행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다. 그는 "흥행이 안 되면 다음 작품이 없다. 당연히 어떤 작품,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제가 더 나이를 먹어도 아버지 역할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 작품에 열심히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