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미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뒤집는 내용의 판결초안이 유출된 것에 대해, '사실이지만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사무엘 앨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이 초안은 지난 2월 대법원에서 회람됐으며, 9명 대법관 중 최소 5명의 지지를 받았다. 대법원에서는 일단 초안이 제기되면 대법관 간 논쟁을 거쳐 비공개 투표, 때로는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래서 최종 결과는 초안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 온 미국법의 기반이 뒤집히고 있음은 분명하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으로 헌법에도 없는 낙태 권리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판결을 뒤엎으려는 정치사회운동을 수십 년간 펼쳐 왔다. 이 운동은 트럼프를 통해 대법원이 6대 3의 보수 절대우위로 바뀐 지금, 마침내 절정에 이른 것이다.
참담한 패배를 눈앞에 둔 자유주의 시위대는 대법원 앞에 모여 길 건너편 의회의 의원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이에 민주당의 선거전략가들은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민주당엔 암울할 정도로 비관적인 올가을 중간선거전에서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민주당의 가장 효과적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뉜 시민사회 이슈에서 낙태 권리만큼 민주당 영역이 넓은 이슈는 없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미국인들은 낙태 권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CNN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30%만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당은 이 이슈에 관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의회에서 정치권력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인플레이션, 코로나, 여론조사 등 불리한 문제들로부터 선거전의 주제를 바꾸려고 하던 참에 유출된 초안이 반갑기 그지없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속하게 '여성을 위태롭게 할 매우 위험한 급진적인 결정'이라고 의견을 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대표는 지독한(abomination) 일이라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반세기 동안의 대법원 판례를 뻔뻔스럽게 무시(brazenly ignoring)했다면서 중간선거 프레임을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여성의 인권투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자유주의자들이 법원을 위협하기 위해 유출을 조작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은 즉시 '낙태 이슈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공화당은 의사와 여성을 감옥에 가도록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화당은 피임약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선거캠프에 보냈다. 공화당 지도부는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권리인 생명권을 옹호하는 결정"이라는 조용한 성명만 냈다. 공화당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 주지사와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 문제에 대해 절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엎으려고 대법관 3명을 임명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언론 인터뷰에서 "그 공개된 초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대법원도 큰 충격에 빠졌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법원 기밀에 대한 배신"이라며 유출 경위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어쨌든 낙태금지 초안은 대법원에서 6대 3이나 최소한 5대 4로 확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질 중간선거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뜨거운 정치전쟁이 예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