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과 대통령실 인선을 보면 윤 당선인의 지향이 ‘로비스트 정부’인가 싶다. 대형로펌 고문이나 대기업 사외이사 경력자를, 그것도 상당수는 최소한의 시차도 없이 다수 중용한 이유를 달리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 기가 막힌 건 ‘뭐가 문제냐’는 당사자들의 태도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노골적이고 이렇게나 당당해도 되는 건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내정자는 가히 로비스트 정부의 ‘끝판왕’이다. 고위 공직과 대형로펌 고문 자리를, 그것도 두 번씩이나 오가는 건 대다수 공직자에 대한 모욕 아닌가. 게다가 김앤장은 론스타의 ‘먹튀 논란’은 물론 일본 전범기업과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을 대리한 곳인데, “신문(기사)에 어느 로펌이 대리하는지 안 나와”서 몰랐다니. ‘혈세 도둑’ 소리까지 듣던 외국계 투자회사의 이익에 복무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서는 염치없음은 또 뭔가.
대기업 사외이사로 일하다 곧바로 행정부처 수장이 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본인이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것과 배우자가 대형로펌 소속인 게 무슨 상관이냐는, 어제까지 대기업을 홍보하다 오늘부터 대통령과 국정 홍보를 총괄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그런 ‘능력자’가 이렇게나 많은지 몰랐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워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했던 이명박 정부 1기 내각조차 사외이사 경력자는 3명뿐이었고 그나마 대기업 관련자는 1명이었다.
대형로펌과 대기업에서 고문이나 자문역을 비롯해 각종 임원 직함을 가진 이들은 점차 심화하고 있는 관료ㆍ법조인ㆍ정치인ㆍ교수와 대기업ㆍ금융회사 간 유착의 핵심 고리다. 그들만의 기득권 리그 내에서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은밀한 로비가 이뤄진다. 지금 어느 누가 차떼기ㆍ박스떼기를 하나. 건당 수억 원이 오가는 각종 ‘자문’은 이미 대형로펌의 주된 업무가 됐다. 대다수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객관을 가장한 교묘한 짬짜미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외업무 책임자가 오너한테 불려가 ‘우리만 병신 된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더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로비와 결탁이 좀처럼 외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돈독한 관계가 부와 권력과 명예를 보장한다는데 누가 이를 거스르겠나. 로비스트 정부의 구성원을 기꺼이 자임한 이들이 “특혜를 줬다는 증거를 대라”(한덕수 후보자)거나 “이해충돌 우려는 기우”(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라고 큰소리치고, 예비 여당이 “김앤장 고문이 순수 사적이익을 목적으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고 거드는 데에선 할 말을 잃게 된다.
우려되는 건 또 있다. 조만간 구성될 분야별 민관합동위원회 인선이다. 당초 폐지를 전제했던 수석비서관제가 상당 부분 유지됐으니 규모는 줄겠지만, 이해관계가 분명한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이 정부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할 경우 심각한 이해충돌 문제로 번질 수 있어서다.
윤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한 축이었던 대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을 단죄했던 당사자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정점에 오른 지금은 어떤가. 대형로펌 고문이나 대기업 임원은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납세자인 국민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공동체의 가치에 기반해 조율ㆍ조정하고 집행하는 정부가 그들에게 기대야 할 이유가 뭔가. 그들의 숱한 흠결까지 감내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그토록 강조하는 공정ㆍ상식ㆍ정의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로비스트와 공직자 간 거리두기 제도화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양정대 에디터 겸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