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

입력
2022.05.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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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와닿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인플레이션. 한 국가의 재화와 용역 가격 등 전반적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상태. 고등학생 시절 개념을 처음 배웠고 대학에서는 경제학 원론 시간에 귀동냥을 했었다. 이렇듯 익숙한 개념이긴 하나 피부로 체감하는 것은 그 기분이 남다르다.

사실 인플레이션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30년의 시간 동안 물가 상승은 항상 있었다. 어린 시절 500원 하던 과자가 지금은 1,500원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실시간으로 ‘아, 이것이 인플레이션이구나.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고 있구나’ 실감한 것은 단연코 처음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오르고 있다. 물가도, 내 월급도 올랐다. 문제는 살벌하게 오른 물가에 비해 내 월급은 너무 귀엽게 오르고 있다는 것. 연봉 협상 시즌, 회사가 제시한 상승률은 감사했으나 미친 듯한 물가 상승에 희석되었다. 코로나발 유동성 파티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폭등할 때 이미 한 번 놀랐지만, 실물 물가까지 오르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장기화된 전쟁은 원자재와 농산물 수급을 어렵게 만들었고 연쇄적인 물가 상승에 불을 질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외식 물가가 전년도에 비해 6.6% 상승했다고 한다. IMF 구제금융 신청 영향권이던 1998년 4월 7% 상승에 비해 두 번째로 높다. 체감 물가 상승은 그보다 더하다. 자주 가는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10%, 20% 오르는 것이 예사다. 지갑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배달 역시 물가 상승의 일등 공신이다. 배달비뿐만 아니라 최소 주문금액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이 소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새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웬만하면 배달보다는 직접 픽업한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배달을 시킬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어제는 아침 7시 반부터 회의가 열린 탓에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 배달 앱을 켰다. 단골 가게를 검색해서 내가 좋아하는 카야 잼 토스트를 찾았다. 매장에서는 3,500원인데 배달앱에는 4,500원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아이스 카페라테 3,500원, 배달비 3,000원. 조그만 토스트에 커피 한 잔 마시는데 1만1,000원이다. 이거 시키고 배달비를 낼 바에는 점심과 간식까지 한꺼번에 시켜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닭가슴살 샌드위치, 햄치즈 토스트를 추가한다. 각 5,500원, 3,900원. 총 2만400원이다. 카페에서 2만 원 쓰기가 이렇게 쉽다. 배달도 이제 못 시키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조사비도 올랐다. 5만 원이면 족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10만 원 정도는 내야 예의를 차린 느낌이다. 결혼식장 식대가 올랐으니 적게 내면 오히려 민폐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지인 두세 명이라도 결혼하면 경조사비 부담도 상당한 셈이다. 이 미친 듯한 상승 릴레이에서 상승 폭을 못 따라가는 것은 내 월급뿐이다.

5월 10일, 새 정부가 열린다. 쌓여 있는 국정 과제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일반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를 일순위로 두고 신경 써주기를 바란다. 화려한 정치 논쟁보다는 인플레이션에 고삐를 채우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이기를 소망한다.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