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1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그제야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녀 문제 등 각종 의혹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며 인사청문회 자체를 포기하겠다 선언한 뒤 일제히 퇴장한 것이 오후 7시 30분쯤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다 나가버렸으니, 국민의힘 의원들도 정회 선언 뒤 인사청문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니까 정 후보자는 그 어느 당 의원도 없는 국회 인사청문회장 자리를 4시간 반 동안 홀로 지킨 셈이다. 간혹 국회 직원이나 취재진이 오갔을 뿐 인사청문회장은 고요했다. 그 4시간 반의 고독은, 절대 자진사퇴하지 않겠다는 정 후보자의 결심을 웅변하는 듯했다.
민주당의 파상공세와 여론 악화에도 불구하고, 정 후보자가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새 정부의 코로나 재유행 대비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많은 전문가들이 새 정부 출범 초기를 '가을 재유행 대비를 위한 골든타임'이라 불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방식이든 빨리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4일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 실천과제별 이행계획을 공개했다. 지난달 27일 100일 로드맵을 공개한 뒤 이번엔 그 로드맵에 따른 세부 계획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34개 과제로 정리한 것이다.
이 내용만 봐도 새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이 할 일은 산더미다. 당장 가을 재유행을 대비해 동선 분리가 가능한 동네 병의원을 4,000곳 이상 확보해야 한다. 긴급치료병상, 파견의료인력을 준비하려면 관련 예산안을 이달 중 짜야 한다.
8월쯤 새 거리두기 체계를 만들려면 이달부터 조사와 의견 수렴 등 사전 작업에 나서야 한다. 고위험군 패스트트랙 적용, 보건소 기능 강화 등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을 보완하려면 이달부터 연구용역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또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의료계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비상시 공공정책 수가' 도입, 감염병 대응을 위한 예산을 아예 별도 기금으로 조성하는 방안, 중앙감염병 병원 설계 공모 같은 굵직한 정책 이슈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부처 간 협의, 세부적인 각종 규칙 제·개정 작업 등 해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 후보자를 둘러싼 국회 갈등에 장관 임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고민정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인사청문회에 이어 이날도 기자회견을 열고 정 후보자 자녀의 편입학 의혹을 제기, '자진 사퇴' 압박을 이어 갔다.
정 후보자 스스로는 적어도 보건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자신감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인사청문회에서 '코로나19에 잘 대응하고 준비하는 데는 본인이 적격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2020년 대구 신천지 교회발 집단 감염 대응 경험을 내세우며 "아무래도 저희들이 처음 경험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대부분이 도덕성 검증에 치우친 바람에 정작 제대로 된 정책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 정부의 방역·의료 정책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도 "현재 애쓰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뭐라고 말하기엔 부적절하다"며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아무리 허울뿐인 수장이라도 우두머리가 있는 조직과 없는 조직의 실행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현장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장관이 되면 정책과 현장이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