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집주인'이 떠나기 1주일 전, 청와대 세종실에 문재인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렸다. 대통령실의 기능을 마감하게 된 만큼, 이곳 청와대에 또 다른 대통령의 초상이 더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청년 화가 김형주씨가 취임 전 문 대통령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 보낸 초상화. 촛불민심에서 태동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제 역사 속으로 봉인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내일(10일)이면 문재인 정부는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된다. 그의 초상화 옆에 나란히 걸린 박근혜 등 11명의 전직 대통령이 이끌었던 정부가 그랬듯이.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은 아름다운가. 자신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마스크 뒤에서 웃음 지었던 문 대통령은, 오늘 오후 6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올리며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지 모르겠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첫날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부디 공보다 과를, 칭찬했던 이보다 상처받은 이를 앞세우며 올바른 답을 찾기를 기대한다. "다른 정부와 비교될 것"이라 했던 지난 4일 오찬 자리에서와 같은 '자만의 자화상'을 그려내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밤 문재인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린 세종실의 불이 꺼지고 청와대가 비워지면, 그 자리를 대신한 권력이 용산 국방부 청사의 새로운 대통령 집무실에서 불을 켠다.
윤석열 정부의 시작은 문재인 정부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더욱 험난할 것으로 우려된다. 극단으로 갈라진 국민의 통합이 큰 숙제였지만, 그래도 문 정부는 촛불민심이라는 막강한 지지 명분을 추력으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직후 84%에 달했고, 북핵 위기와 같은 걸림돌에도 1년 이상 70~80%대의 매우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얕은 지지층과, 오락가락하는 약속들로 초라한 출발선에 서 있다. 지지율만 봐도 문 정부와 차이가 난다. 6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윤 당선인에 대한 직무수행 긍정평가 비율은 41%에 그쳤다. 대선 승리를 견인한 지지층으로 꼽히는 2030세대의 지지율마저 40% 초반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아빠 찬스'로 먹칠한 인선이 새 정부의 바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윤석열 측만 모르는 걸까. '불법이 아니면 도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장관 후보자를 내몰지 않고, 국회에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했다. 뻔뻔한 건지 무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 사람에 대한 집착이 이런 식이면 국민 통합은커녕 고작 0.73%포인트 앞섰던 우위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단기적 인기에 영합하고 날카로운 철학이 담기지 않은 부실한 약속과 정책들도 윤석열 정부의 출발을 무겁게 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약속해놓고 인수위 국정과제에는 이 내용이 빠지고, 소상공인 손실보상도 후퇴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윤 당선인의 '엎어진' 약속들을 열거하며 '대한민국 국민들 속을 뒤집어엎었다'는 글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윤석열 새 대통령은 청와대에 '단 하루도' 머물지 않는다고 했지만, 권력이 떠난 그 공간에 잠시 들러 문 대통령의 초상화를 지켜봤으면 한다. 그 앞에서 문 대통령이 떠올렸을 후회와 그의 아쉬웠던 말과 결정에 대해 생각하길, 그리고 문 정부가 제 사람 챙기기와 물색없는 정책 집행으로 민심을 잃었음을 기억해내 그 전철을 어떻게든 피할 지혜를 짜내길 바란다. 5년 후 정말로 만족스럽게 자신의 초상화를 지켜보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원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