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환경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일본에서 전후(戰後) 75년간 시행돼 온 '평화헌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공론화할 조짐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에 의한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개헌에 주저하던 일본 여론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자위대에 대한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7월 참의원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본격적인 개헌 드라이브에 나설 의향을 나타냈다.
기시다 총리는 헌법기념일인 3일 게재된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의원) 선거에서의 (개헌) 호소를 통해 당의 적극적인 자세를 드러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헌법은 시행 75년이 지나 시대에 맞지 않고 부족한 내용도 있다”며 특히 위헌 논쟁을 끝내기 위해 개헌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국민에게 설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자민당은 헌법 9조에 자위대 명기 등 4항목 개헌안을 정리한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대규모 감염병이나 재해, 타국의 침공 같은 긴급사태 발생시 정부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긴급사태 조항에 대해 “긴급시에 국회의 기능을 유지하고 국가나 국민의 역할을 확실히 명기해 두는 것은 유사시 대비를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개헌을 위해 “공명당을 비롯해 다른 정당에도 긍정적 대응을 기대한다”며 향후 국회 논의를 공론화할 의지를 내비쳤다.
기시다 총리가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그동안 소극적이던 일본 여론이 바뀐 배경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매년 헌법기념일마다 실시하는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올해는 개헌 찬성 의견이 반대를 크게 웃돌았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 찬성 60%, 반대 38%로 찬성이 조사를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많았다. 개헌 항목과 관련해선 ‘자위를 위한 군대 유지’(45%), ‘긴급사태 대응’(38%), ‘교육 무상화’(36%) 등의 순으로 찬성이 높았다. 다만 전쟁 포기를 규정한 9조 1항은 ‘바꿀 필요가 없다’가 80%로 압도적이었고, 육·해·공 전력 보유를 금지한 2항에 대해선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0%였다. 아사히신문 조사도 개헌이 ‘필요하다’가 56%로, ‘필요 없다’(37%)를 훨씬 앞질렀다. 교도통신 조사는 개헌 필요 의견이 68%에 달했다.
달라진 여론에 개헌 반대파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도쿄 고토구 아리아케방재공원에서 열린 ‘2022 헌법대집회’에는 개헌반대 정치인과 시민들이 모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이런 때야말로 세계에 평화헌법을 확산시킬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여론 지형이 바뀐 데다 야권에서도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개헌파 의석이 늘어 기시다 총리 임기 내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마저 언급된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 이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의 승리와 일본유신회 의석 증가가 예상되는 반면, 개헌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입헌민주당과 일본공산당 의석은 줄거나 현상 유지로 전망되는 실정이다.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회 ‘헌법심사회’는 올 들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개헌이 실현되려면 중의원은 물론 참의원에서도 3분의 2가 찬성하고 최종관문인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