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보다 못한 전기요금정책

입력
2022.05.03 00:00
27면

원숭이를 여럿 키우던 사람이 예산이 부족해서 원숭이들의 도토리 배급을 줄이기로 하였다. 원숭이들에게 앞으로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만 주겠다고 하니까 원숭이들이 격하게 반발하기에,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니까 원숭이들이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 조삼모사(朝三暮四)로서, 상대방을 현혹하여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얄팍한 술수와 그것에 넘어가는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꼬집는 말이다. 아침에 네 개를 주든 저녁에 네 개를 주든 합이 일곱으로 실질적인 차이는 없고 다만 포장을 다르게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전력공급 원가가 급등하는데도, 정부가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게 하면서 한전의 적자가 엄청나게 쌓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연료비가 오를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다. 이렇게 누적되어 온 한전의 적자는 결국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당장 전기요금을 덜 내는 대신에 나중에 세금을 더 내야 하니 전형적인 조삼모사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전기요금정책은 실질적으로 국민의 손실을 더 크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원숭이들의 조삼모사보다 더 나쁘다.

우선 전기요금이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원배분의 비효율을 야기한다. 아진 비용이 가격에 제때에 반영되면 소비자들은 불필요한 전기소비를 줄이고 전기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이런 유인이 줄어들면서 전기를 과다사용하게 되고 한전의 적자도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심지어 싼 전기료를 노리고 데이터센터와 같이 전기를 많이 쓰는 해외산업들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수도 있다. 그러잖아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갈 길이 바쁜데 반갑지 않은 외부손님까지 치러야 될 판이다.

둘째, 수익자비용부담 원칙이 위배되어 공정성과 효율성이 훼손된다. 전기요금 인상 대신에 나중에 추가적으로 부과될 세금이 전기사용량에 비례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전기사용과 비용부담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납세액 대비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사람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을 보조하게 되는데, 전기를 많이 쓰는 가계나 기업들의 경제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으므로 약자가 강자를 도와주는 결과가 된다. 거대 다국적 기업의 전기료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보조해 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셋째, 투명성 부족의 문제가 있다. 억제된 전기요금 대신에 나중에 날아들 청구서에는 어떤 비용이 포함될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정상적인 전기요금은 총괄원가보상이라는 확실한 원칙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전력공급과 무관한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에 한전의 적자 보전에는 전력공급과 무관하게 발생한 손실까지 슬며시 끼어들 수 있다. 한전이 떠맡은 정책사업들의 비용이 전가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이런 전기요금정책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국민들이 원숭이들처럼 어리석거나 근시안적이지는 않을 테니까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 시스템이 국민들을 위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이끌어낼 능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국민들의 정상적인 선택을 왜곡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